언제부턴가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돈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고 삶에 의미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필 자도 많은 돈이 있으면 그만큼 많은 선택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돈만을 좇게 되고 그 끝에는 행복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돈만을 좇아 찾은 행복과 그저 일상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행복 중 필자가 생각하는 더 가치 있는 행복 은 후자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물질적 행복감’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삶을 의미 있게
2022년 3월, 나는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통지서를 받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내 어떠한 동아리가 있는지 둘러보던 중, 아버지가 다가와 이 말을 꺼내고 간 일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대학교에 들어갔으면 글을 한번 써 보는 게 어때? 음... 학보사 같은 거 말이야” 원체 글을 쓰는 것 보다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처음에는 그 말을 흘려들었지만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를 찾아보니 마땅히 원하는 곳이 없어 아버지의 말씀대로 학보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대학 언론인으로서 무언가를 해보
이번 학기에 유준 교수님의 세계문학감상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이 수업은 주차 별로 정해진 책을 미리 읽어 와야 하는 조금은 귀찮을 수 있는 수업이다. 하지만 핸드폰과 책 중에 번번이 핸드폰을 선택해 왔던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한 수업이었다. 매주 꾸준히 책을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번 주에는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게 되었다.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반 일리치는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무뚝뚝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서, 일상생활도 못 할
행주산성을 작성하면서 항상 매 호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하지?’ 라는 막막함에 부딪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번 호도 어떤 주제로 쓸지 고민하던 중, 이왕 이번 행주산성 주제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이나 강연을 보고 감상문 같지 않은 감상문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아무래도 TED 강의였고 그 중 나의 눈에 들어온 건 ‘지배자가 아닌 리더가 되어라’ 라는 사이먼 사이넥 강연이었다. 대략 11분 이라는 짧은 강연이지만 내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난 사이먼이 말하는 리더의 조건을 갖추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상상한 것을 그려내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항상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통에 물을 떠 놓고 붓을 들며 큼지막한 스케치북에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마구잡이로 그려냈다. 그렇게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생 때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 워낙 입시 미술이 혹독하기로 유명해서 힘들기도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상상해서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만큼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대 입시를 깔끔히 포기했다. 이후 미술이 아닌 다른 길을 계속해서 찾아보다가
나는 다이어리 첫 장에 항상 나에게 전할 짧은 편지를 쓴다. 이번 연도 다이어리에는 “처음이기에 낼 수 있는 용기를 마음껏 펼치길 바라.”라는 문구가 마지막 줄에 써져 있다. 글로 쓰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이번 연도부터 처음이기에 낼 수 있는 용기는 죄다 내고 있는 것 같다. 새내기 멘토부터 시작해 마케팅 학회 부회장, 에어버스 공모전, 다사 다난한 팀플 등 사실 뭘 많이 한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새내기 때의 나는 이럴 줄 알았을까..? 이제 신문사 편집국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사실 굉장히 어깨가 무겁다.
생명체의 본능자기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오래 남았으면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동식물이 번식에 열을 올린다. 대표적으로 사슴, 소, 사자, 고릴라는 암컷 무리를 독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로 싸우지 않더라도 평화적인 방식으로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 번식기에 노래 실력을 뽐내는 수컷 찌르레기나 화려한 꼬리털을 펼쳐 암컷을 유혹하는 공작새의 행위들은 모두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함이다. 최종적으로 암컷은 가장 우월한 수컷을 선택하여, 자기 유전자의 생존력을 높이는
부산에서 서울까지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보통은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 KTX, 또는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아는가. 예를 들어 걸어서 갈 수도 있고, 말을 타서 갈 수도 있으며(조선시대에는 가장 좋은 교통수단이었다.) 히치하이킹을 해볼 수도 있고,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일본을 한번 거쳐서 서울에 도착해볼 수도 있겠다. 이렇듯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보편적으로는 KTX나 버스를 이용하겠지만,
“꿈이 뭐니?”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었다. 항상 대충 둘러대곤 했지만, 늘 ‘없는데요’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나도 한때는 야구선수라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더 이상 야구를 안 시켜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걸까? 결국 학교 숙제 때문에 엄마한테 내 꿈을 들키고 말았다. 그 당시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미술 시간에 도화지에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홈런을 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기아타이거즈 4번
왜 사람들은 실수를 인정하기가 어려울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실수를 인정하면 이유 모를 패배감이 생기고,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이 행한 연구에 따르면 “맞아, 내가 실수 했어”라고 말하기보다는 “미안해”라고 말하는 게 더 쉽다고 한다. 후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정서적 측면만을 바로 잡는 것이 목표이다. 그만큼 차라리 사과를 할지언정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습관은 도리어 흠이 없고, 취약하
(1201호 ‘니가 잘하는 걸 열심히 하는 거 어때’ 칼럼을 이어서 써보았습니다. ‘니가 잘하는 걸 열심히 하는 거 어때’도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한국 청년들은 보통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이들의 꿈은 취직이다. 이들은 미달된 점수를 채우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토익 점수를 최대한 높인다. 대회에도 나가서 수상경력을 쌓는다. 이들은 이렇게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목매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는 모른다. 나이를 스무살 넘게 먹고도 본인의 장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단지 스펙을 끌어올려
(1200호 행주산성의 ‘또 도망갈래?’와 반대되는 내용입니다. ‘또 도망갈래?’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세상은 ‘노력’을 너무 과대평가한다.마치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 축구 국가대표 ‘이영표’ 역시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실패한 축구선수들은 모두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 된다. 경쟁자보다 더 열심히 달리고 젖먹던 힘을 다해 공을 찼을지도 모르는데 결과만 보고 속단하기엔 그들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이미 사람들한테 예체능만큼은 재능의 비중이 크다
신문사 국장이 되었다. 감히 학창 시절에 반장도 못 해본 놈이 국장이 되었다. 얼떨결에 수락한 국장 자리... 솔직히 겁이 났다. ‘뭐 그렇게까지 오버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늘 이래 왔다. 음...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항상 도망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불편해 술자리를 피했고 처음 들어간 축구 동아리에서는 첫 경기에서 헛발질을 크게 하는 바람에 창피해서 다음 날 탈퇴했다. 처음 갔던 동아리 MT에서는 술 게임을 잘 몰라서 자는 척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랬던 내
“아휴...퇴임기자의 변 꼭 써야 하나...칼럼 쓰기 싫은데...” 필자가 이번 1198호 계획 회의에서 나지막이 혼자 뱉은 말이다. 글쎄....벌써 이런 시간이 왔다는 생각에서의 아쉬움이었을까, 아니면 또 칼럼을 쓰기 싫은 생각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이러한 생각들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기자의 정수는 바로 칼럼이다! 라고 주창하면서도, 항상 칼럼을 쓰기는 회피하였던, 그러한 모순을 항상 보여줬다랄까나. 사실, 1학년 시절부터 신문사에 참여하여 다양한 기사를 써보아서 이제는 기사 쓰는 것이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아직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물 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
고요한 적막이 감든 새벽 밤. 글을 쓰면서도 문장이 맘에 안들어, 쓴 글을 다시 지우고 다시 채우며 생각을 해본다. 할 일은 많지만, 그것을 할 의지는 전무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랄까나 이상은 참으로 높지만, 현실은 이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이다. 매년 드는 생각이지만, 시간은 참으로 속절없이 흘러간다. 올해도 벌써 2학기 개강을 앞둔, 8월말이다. 시간은 내 속도 모르고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겉은 번지르르해 보이는, 그러한 인두겹을 쓴 아무 실체도 없는 그러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그저 오
19세기 런던의 참혹한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이야기는 다들 알 것이다. 잭 더 리퍼는 당시 빈민가이자 윤락가였던 화이트채플에서 최소 5명의 사람을 살해하며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가 벌인 범죄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고, 필자가 들여다보고자 하는 부분은 사건 이후의 변화이다. 그 끔찍한 범행이 오히려 빈민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당시 화이트채플 뿐만 아니라 19세기 영국은 전반적으로 산업혁명의 병폐로 찌들어있었다. 밤낮으로 일해도 끼니를 챙길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노동환경은 자연스레
우리 사회에 혐오와 증오가 만연하다. 자신과 아주 약간이라도 다르면 상대방은 ‘적’이 된다. 나와 정치적 의견이 달라도 ‘적’이고, 나이가 달라도 ‘적’이고, 나와 성별이 달라도 ‘적’이다. 이렇게 적이 된 상대방은 더 이상 나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다. 사악하고 증오스러우며 무찔러야할 ‘절대악’이 된다. 왜냐? 나랑 ‘다른’ 사람은 존재해서는 안 되고,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이를 증오하는 우리 정치 갈등, 세대 갈등 그리고 성별 갈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일 것이다. 개인적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던 나라였다. 서로에게 침묵을 강요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숭고한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지 않았는가? 죽음을 각오하고 불의에 저항했던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자유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산소와 같아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소중함을 잊게되는 것 같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직도 지구촌에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
‘모병제’라고 하면 대부분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먼 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휴전 중인 국가이니 많은 병사가 필요하고, 이 병사를 모병제로 유지하려면 재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하다. 현 징병제에서는 병사 한 명당 월급을 44만 1700원(일병 기준) 지급하며 노동력을 받기 때문이다. 모병제를 시행한다면 최소한 최저시급인 179만 5310원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상으로만 보면 현 징병제가 훨씬 경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행주산성에서는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오히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