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개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천명했다. 예를 들어 정부는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한 경우 피해보상금으로 1인당 4억을 지급하겠다고 당당하게 발표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부가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금으로 책정한 초기 예산이 약 4억이었던 것이다. 백신 부작용의 위험성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았어도 이슈만 되지 않으면 되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어느 쪽이든 심각한 것이다. 그 결과 10월 중순 기준 백신 부작용으로 보고된 사망 1100여 건, 중증
한국항공대 신문사에 들어온 후, 처음 칼럼을 써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칼럼이라고 하면,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 쓸 것만 같은 느낌도 들면서 시사상식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사람만 쓸법한 느낌이 들었다. 칼럼을 쓰기 위해 신문사 홈페이지를 통해 선배들과 동기 기자들의 칼럼을 읽어보았다. 본인의 기존 생각처럼 시사상식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쓴 기자도 있고, 자신의 과거 또는 인생에 관해 쓴 기자도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에게도 슬쩍 물어봤는데, 칼럼은 수필이니까 여행에 대해서 적어보는거는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기도 하였다
작년과 올해 스포츠와 연예계가 학교폭력으로 뒤숭숭했다. 첫 시작은 여자배구였다. 사실 여자 배구는 11년 만에 외국리그에서 흥국 생명으로 복귀한 ‘배구 여제’ 김연경 덕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 국가대표 쌍둥이 자매로 유명했던 이재영, 이다영까지 김연경과 한팀이 되면서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승은 확정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심지어 무패우승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필자 역시 배구에 관심이 없었지만 김연경 선수의 플레이가 궁금해 배구 영상을 찾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졌다. SNS에
고요한 적막이 감든 새벽 밤. 글을 쓰면서도 문장이 맘에 안들어, 쓴 글을 다시 지우고 다시 채우며 생각을 해본다. 할 일은 많지만, 그것을 할 의지는 전무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랄까나 이상은 참으로 높지만, 현실은 이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이다. 매년 드는 생각이지만, 시간은 참으로 속절없이 흘러간다. 올해도 벌써 2학기 개강을 앞둔, 8월말이다. 시간은 내 속도 모르고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겉은 번지르르해 보이는, 그러한 인두겹을 쓴 아무 실체도 없는 그러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그저 오
지난 8월 15일, 6월부터 지속되어 오던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간의 내전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측의 항복으로 그 막을 내렸다. 부패한 정부와 쇠퇴한 군사력, 미군의 철수를 고려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탈레반의 승리로 내전이 끝나자, 아프가니스탄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카불공항은 아프가니스탄을 하루빨리 탈출하고자 하는 인파들이 몰렸고, 이륙하는 비행기 바퀴에 매달려 탈출을 시도하다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그들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함이, 탈레반의 지배 아래 살 수 없다는 몸부림이, 우리들에게
누구에게나 가슴 떨렸던 처음이 있는 법이다. 2018년도의 나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던 새내기이자 홍일점 막내 수습기자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새로 들어온 수습기자의 기사를 검토해주는 선배이자 정기자가 되었고, 어느새 꼭 하고 싶었던 신문사 국장까지 감사하게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선임기자의 역할로 4년째 신문사에 남아 기사를 쓰고 있는 고학번 선배가 되었다. 1166호부터 1190호까지 총 35부의 신문에 내 이름이 담겨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필자가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신문이라는
19세기 런던의 참혹한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이야기는 다들 알 것이다. 잭 더 리퍼는 당시 빈민가이자 윤락가였던 화이트채플에서 최소 5명의 사람을 살해하며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가 벌인 범죄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고, 필자가 들여다보고자 하는 부분은 사건 이후의 변화이다. 그 끔찍한 범행이 오히려 빈민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당시 화이트채플 뿐만 아니라 19세기 영국은 전반적으로 산업혁명의 병폐로 찌들어있었다. 밤낮으로 일해도 끼니를 챙길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노동환경은 자연스레
지난 4월 16일 새벽, ‘유러피안 슈퍼리그’의 창설이 발표되었다. 유러피안 슈퍼리그의 출범은 발표 직후, 유럽 전역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유는 슈퍼리그의 구성과 그 구성에 따른 기존의 틀의 완전한 파괴에 있었다. 슈퍼리그는 20개의 유럽 전역의 메가 축구 클럽 간의 리그이다. 유럽 각지의 강팀들끼리 리그를 구성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것인데, 이것이 많은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축구는 그 축구팀의 연고지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이다. 각 축구팀마다 연고로 하는 연고지가 있어서, 그
우리 사회에 혐오와 증오가 만연하다. 자신과 아주 약간이라도 다르면 상대방은 ‘적’이 된다. 나와 정치적 의견이 달라도 ‘적’이고, 나이가 달라도 ‘적’이고, 나와 성별이 달라도 ‘적’이다. 이렇게 적이 된 상대방은 더 이상 나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다. 사악하고 증오스러우며 무찔러야할 ‘절대악’이 된다. 왜냐? 나랑 ‘다른’ 사람은 존재해서는 안 되고,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이를 증오하는 우리 정치 갈등, 세대 갈등 그리고 성별 갈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일 것이다. 개인적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논란이 뜨겁다. 이미 지난달 16일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건의했을 정도이다. 삼성 일가가 지난달 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 산의 60%를 상속세와 기부 등의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면서 이재용 사면 여론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경제계를 중심으로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서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1일 기준으로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혐오와 선동으로 점칠된 광기의 시대를 보는 것 같다. 세대, 성별, 빈부 격차 등 모두가 상호 대척점에 있는 상대를 혐오하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원한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부추기며 표심 얻기에 급급해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전 세계 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조선 말기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요즈음 군대 내 부실 식단 및 과잉 방역 논란 역시 정말 조선 말기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 말 임오군란이 어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던 나라였다. 서로에게 침묵을 강요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숭고한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지 않았는가? 죽음을 각오하고 불의에 저항했던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자유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산소와 같아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소중함을 잊게되는 것 같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직도 지구촌에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
“와, 나 진짜 한 해 동안 뭐 했냐. 우리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매년 연말이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묵직한 한마디이다. 이 말이 나온 뒤 술자리는 두 가지 분위기로 나뉜다. 첫째는 모두가 공감하며 침울해지는 분위기, 둘째는 공감하지만 오늘을 즐기자는 분위기. 한 해가 별 성과 없이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와 고민에 빠져드는 이들의 나이는 고작 20대 초중반이다.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과정까지 부정되는 삶을 살아왔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미 결과주의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과정에 만족감을 느낄 수는
수많은 사람이 주식과 비트코인의 열풍에 휩쓸렸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곳에 뛰어들고 있다. 평소에는 주식의 ‘주’ 자에도 관심이 없었고, 2020년 주가 대폭락 사태 이후 주가가 회복을 거쳐 상승을 기록한 뒤에도 ‘그러던가 말던가’라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필자의 친구들까지 필자에게 주식을 묻고 있다. 한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대학 동기 비트코인 이야기를 해줬다. ‘리플’이라는 한 비트코인을 구매했는데 바로 얼마 뒤 –36.70%의 손실을 기록하였고, 비트코인 갤러리라는 한 사이트에 그 사실을 글로 올렸더니 사람들이 추천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항상 나오는 ‘무야호’를 아는가? 정체 모를 감탄사 ‘무야호’는 옛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나온 유행어이다. 미국 알래스카 한인회를 찾아간 무한도전 멤버들이 한국 교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유재석이 미국에서도 무한도전을 보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 할아버지는 무한도전을 잘 모른다고 했고, 화제의(?) 주인공 최규재 할아버지는 미국에서도 많이 본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노홍철은 ‘무한도전!’을 외쳐달라며 “무한~”이라 말을 건넸지만 사실 무한도전을 잘 몰랐던 최규재 할아버지는 정체불명의 “무야호~”를
‘모병제’라고 하면 대부분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먼 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휴전 중인 국가이니 많은 병사가 필요하고, 이 병사를 모병제로 유지하려면 재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하다. 현 징병제에서는 병사 한 명당 월급을 44만 1700원(일병 기준) 지급하며 노동력을 받기 때문이다. 모병제를 시행한다면 최소한 최저시급인 179만 5310원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상으로만 보면 현 징병제가 훨씬 경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행주산성에서는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오히려 더
최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전쟁으로 그 배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전쟁의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로 다른 민족 간의 증오는 항상 모든 곳에 끼어있고, 민족주의가 그 증오의 원인이다. 19세기 나폴레옹이 일으킨 프랑스 혁명 전쟁을 통하여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유럽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민족주의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왕당파와 혁명파로 분열되어 매우 약체화되어 있던 프랑스군이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에 실패하고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몰락하였
독자 분들은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냈는가? 부디 넉넉하고 풍성한 한가위가 되었길 바란다. 필자는 추석 연휴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있다. 바로 9월 30일 방영된 가수 나훈아의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이다. 처음에는 그냥 친구들과 카톡하면서 별 생각 없이 봤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나훈아에 빠져들게 되었다. 가수 나훈아는 올해로 만 73세이다. 이러한 나이를 먹고도 끊임없이 신곡을 발표하고, 자신의 팬들을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만 20세의 어린 나도 매일 흘러가는 일상을 그저 반복하면서 세
코로나 사태가 오랜 시간 장기화함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소위 ‘마스크 빌런’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영업자와 알바생들이 방역수칙을 지켜달라고 고객들에게 안내하는 것이 주 업무 중 하나라고 할 정도이다. 단순한 말다툼으로 끝나면 다행으로, 물리적인 다툼으로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8일 충남 홍성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편의점 점주를 폭행한 30대가, 또한 같은 날 광주에서는 마스크 미착용을 이유로 다투던 중년 부부와 고등학생이 입건되었다. 가장 유명한 난동을 꼽자면 2호선 당산역에
이번 기안84의 논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전체주의란 무엇일까?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이러한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행주산성에서는 우리 사회에 퍼진 전체주의와 혐오주의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전체주의란 무엇인가 전체주의라는 말은 다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왜 나쁜 것인지는 알기 힘들므로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전체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을 근거로 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 생활을 간섭·통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