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제 편집국장

 자정이 넘은 2시에 잠이 들어 5시에 일어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뒤 책상에 앉는다. 1시간 정도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고개를 배꼼 내민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 아침을 먹고 난 뒤, 가방을 챙겨 자습실로 향한다. 유자차를 타 마시고, 양치를 하고, 8시까지 신문을 읽으며 바깥세상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가량 공부를 하고 나면 수업을 들으러 갈 시간이다. 3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것은, 바로 나의 수험생 시절 ‘루틴’이다.

 ‘루틴(routine)’의 사전적 정의는 프로그램 용어에서 비롯된,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을 의미한다. 비록 원어 그대로의 맛은 살지 않지만, 우리말로는 ‘습관’이나 ‘관례’, 혹은 ‘반복되는 절차’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위에 설명한 나의 경우에 대입해본다면, 자정이 넘은 시각부터 수업을 들으러 가기 전까지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루틴’이라 할 수 있다. 별 거 아닌 듯 보여도 저 과정들 중 무언가 하나가 생략된다면, 그것은 이후의 모든 과정, 크게는 그날 하루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사소해 보이지만 아침을 먹고 돌아와 유자차를 마시는 일을 깜빡 잊었다고 해보자. 아침을 먹고 든든해진 배는 뇌에 신호를 –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 보내고, 뇌는 나를 잠의 유혹으로 초대한다. 바로 이 순간, 유자차로 잠시 신호의 흐름을 끊고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잠에 빠져버린 나는 신문을 읽지 못하고, 결국 나중에 가서야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신문을 읽는 곤경 아닌 곤경에 처한다. 이는 마치 첫 단추를 잘못 꿰었음을 마지막 단추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 것이 아닌, 첫 단추를 잘못 꿰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단추를 향해 가야하는 불편하고도 찝찝한 일이다.

 이러한 개개인의 ‘루틴’은 이따금씩 부정적인 의미로도 다가온다. 판에 박힌 일상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을 칭하기도 하고, 변화 없는 삶이 얼마나 무력한 삶인지를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무언가 반복된다는 두려움,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이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간혹 이를 벗어나려 슬쩍 한쪽 발을 궤도 밖으로 내밀어보지만, 우리는 그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시 이에 오르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나의 루틴을 상대방에게 설명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시 유자차로 돌아가자. 상대방이 보기에 내가 유자차를 마시는 행위는 ‘별 거 아닌’, ‘익숙한(routine)’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 행위는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최적화 된(optimal)’ 일이다. 이렇게 나는 “루틴이지만 최적화된…”, “루틴이지만 내 몸에 가장 잘 맞는…”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긍정적 의미의 서술어로 루틴을 수식한다. 마치 그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마냥 무의식은 나를 루틴의 궤도 안에 붙잡아둔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우리가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이 반복성과 이로 인한 이탈의 두려움이 아닌, 그 안에서의 ‘안정감’이라는 것이다. ‘징크스(jinx)’와는 다르게, 루틴은 이를 계속 따를 경우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된 나만의 궤도는 각자가 기억하는 최적의 컨디션과 감각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계획했던 모든 일을 완수했다는 느낌과 심리적 안정감이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복’이라는 양날의 검을 끝없이 다듬어야 한다. 행위 자체가 의미 없이 되풀이되어 우리를 짓누르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시행착오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 ‘루틴’은 앞서 말했듯, 얼핏 보면 ‘별 거 아닌’ 것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거나, 시를 한 편 읽는 것. 혹은 이불을 개고 가벼운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는 것. 이 모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당신의 삶을 바꿀 ‘루틴’이 될 수 있다. 반복되는 행위를 찾고, 그 속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보자. 그리고 그 궤도에 올라타 나의 일상을 든든히 받쳐줄 무언가를 찾자. 궤도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이여, 당신 앞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지언정, 부디 그 여정을 포기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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