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현상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병들어가고 있다. ‘돈맥경화’란 시중의 통화는 넘쳐나지만 소비·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대해 경제침체와 대외적인 문제들이 겹치면서 경제주체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결과로 보고 있다.

 

돈맥경화, 판단 지표는?

 보통 ‘돈맥경화’를 판단할 때에는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를 지표로 사용한다. 통화승수는 시중의 통화량(광의통화)을 본원통화(한국은행이 공급한 통화)로 나눈 것이다. 즉,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1원의 통화를 공급했을 때 시중에 창출된 통화량이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것이다. 경기가 호황일수록 소비·투자 심리가 확대되기 때문에 시중의 통화량은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보통 통화승수는 경기가 호황일 경우 높은 숫자가 나오게 된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에 사용되는 횟수를 의미한다. 즉, 명목 국내 총생산(명목 GDP)을 시중의 통화(광의통화)로 나누어 계산한다. 통화승수와 마찬가지로 통화유통속도 역시 경기가 호황일 경우 증가하게 된다. 경기가 호황일 때, 거래량이 증가하고 이는 유통되는 돈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시중의 돈이 돌지 않으면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낮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지표들이 낮으면 경제주체들의 소비·투자 심리가 위축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만약 시중의 통화는 넘치는데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낮다면, 존재하는 돈에 비해 소비·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러한 현상을 의학 용어인 ‘동맥경화’에 빗대어 ‘돈맥경화’라고 표현한 것이다.

 

부동자금은 사상최대, 통화승수는 역대최저

 지난달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의미하는 부동자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983조 3875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통화승수는 올해 1, 2분기에 모두 15.7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통화유통속도 역시 지난해기준 0.72로 역대 최저치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돈맥경화’ 현상의 원인에 대해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속적인 침체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는 재정투입을 확대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노력으로 소비·투자를 촉진시켰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의 대외적인 변수로 인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계·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것이다.

 

얼어붙은 소비·투자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과 설비투자 증가율(전년 대비)은 경제주체들의 소비·투자에 대한 불안 심리를 보여준다. 가게의 소비 변화를 알 수 있는 민간소비 증가율의 경우, 1분기 1.9%, 2분기 2.0%를 기록하였다. 작년과 재작년에 분기마다 2~3%대 증가율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약 1%P 감소한 수치이다. 또한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올해 1분기 -17.4%, 2분기 -7%를 기록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4.3%를 기록한 이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이다.

 이러한 소비·투자의 침체로 인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1%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OECD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4%에서 2.1%로 하향조정하였고, 한국경제연구원은 2.2%에서 1.9% 등으로 하향 전망했다. 금융기관이나 국제기구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점차 낮게 조정하면서 1%대 경제성장률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갈수록 악화되는 유동성, 그 대책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돈맥경화 현상에 대해 정부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은 지속적인 통화·재정정책과 규제완화이다. 확장재정정책을 통해 가계 소득을 늘려주고, 소비세 인하나 세제 지원 등의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과 경기에 대한 경제주체가 느끼는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며 “일관성 있는 통화·재정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동시에 꺼내드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맥경화로 인해 한국의 경제는 점점 병들어 가고 있다. 경기침체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경제주체들은 점점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갈수록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현실적인 발판이 필요한 때이다.

손규영 선임기자 sonjong@ka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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