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7일, 그리고 마지막

  누구나 그렇듯, 언제나 자신이 강한 소속감을 느끼던 집단을 떠난다는 사실은 어색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다가온다. 때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마무리의 느낌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하거나, 이렇게 글로 표현할 때는 그 감정이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마치 내 눈앞에 있는 듯한 이 감정을 글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 쓰는 것은 언제나 추위가 다가올 때쯤에야 헤어짐은 자연스레 찾아온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처음 신문사의 문을 연 순간,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하던 1154호의 조판부터 어느새 후배들의 물음에 답하며 1180호의 조판작업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3년 동안 정말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학생회와 축제취재를 병행하면서 음식을 만들다가 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더 좋은 촬영 구도를 잡겠다며 학교 모든 건물의 옥상을 올라가기도 했다. 겨울방학 동안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신문사에서 추위에 떨며 히터를 켜고 자며, 아침에 일어나면 취재준비를 서두르고 타 대학을 취재하러 찾아가거나 서울역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추위에 떨고, 사람에 치이며 하루하루 힘든 순간이었지만, 되돌아보니 다시는 경험해보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이는 대학 생활 동안 나를 성장시켜주 밑거름이었고, 현재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순간들이다.
  모두 좋은 추억들로 후련하게 털어낼 수 있지만, 때로는 너무 후회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기사를 쓸 수 없을 때 왜 더 저항하지 못했는지, 누군가 옳지 않은 이유로 지적했을 때 왜 반박하지 못했는지. 신문사에서 내 자리를 떠나면서 흔적을 하나둘 지워나가다보면, 이런 순간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송곳이 되어 내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것 같다. 다시금 그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과연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미화시키지는 않는 것인지 끝나지 않는 고민을 남기기도 한다.
  약 한 달 전,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선배들이 남긴 마무리의 흔적을 짚어봤다. 그들의 글에는 모두 뿌듯함, 후련함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아쉬움, 후회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으며, 뭔가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와서야 자신이 걸어온 흔적을 비로소야 되돌아봄을 깨달았다. 문득 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나의 마무리는 어떨지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가, 그 3년의 마무리를 할 때가 돼서야 나는 어떤 기자였는지, 누군가에게 어떤 선배, 후배, 동기였는지를 이제와서야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 결말에 드는 생각은 항상 같다. 더 잘할 걸, 더 열심히 해볼걸, 그 어느 순간에 한 번이라도 나를 되돌아볼걸.
  이런 후회라는 감정이 드디어 마무리를 한다는 뿌듯함과 후련함이라는 감정과 조화되지 못하고, 홀로 남겨질 때나 생각이 많아지는 잠이 들 때쯤 찾아오면, 마치 사랑니가 돋아날 때와 같이 관자놀이 부근이 화끈해진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러한 감정의 요동은 신문사 선후배들이, 대중들이 나를 어떤 기자로 생각해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되어 나타난다. 이런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사그라들게 하기위해, 나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첫 걸음마를 떼는 아기와 같이 처음으로 되돌아가, 내가 글에 감정을 너무 많이 담는다고 혼났던, 2017년의 그 첫 칼럼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한창 문학작품을 좋아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어떤 집단을 떠나게 될 때, 나의 마무리는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마무리하고 싶다고. 그 시절 나는 이상이라는 작가를 가장 좋아했었고, 그의 현실의 마무리가 조금 비참할지라도 작품 속에서의 마지막은 가장 찬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읽혀질 듯 읽히지 않는 글은 읽을 때는 ‘뭔소리야?’싶다가도,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무리에는 그와 나의 생각이 동일시 되어있다는 느낌에 긴 여운이 가슴에 남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내 마무리를 지금까지 무엇인가 시사를 고발하는, 교훈을 주는 등의 칼럼이 아닌, 내 생각만을 진솔하게, 꾸밈없이 담은 글로 남기고 싶었다. 누군가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건데?’라고 평가할지라도 ‘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한마디를 받는, 그런 마무리로 빛내고 싶었다. 마치 다 읽고난 뒤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겨주는「 날개」처럼「, 병신과 머저리」처럼「, 오발탄」처럼.
  언젠가 한 번 특이한 관례가 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장례식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 속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장례식을 보면, 관이 성당에 들어가기 전 관례에 따라 성당의 입장을 세 번 요청한다. 성당의 누구냐는 질문에 첫 번째는 생전 고인의 관직명, 두 번째는 생전 업적을 말한다. 이 두 번을 거절당한 뒤 마지막 대답은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고해와 함께 성당의 입장을 허락받는다. 이는 생전의 관직이나 업적은 하등 쓸데없는 것이며, 그것들이 생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줄지는 몰라도, 그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끔 한다.
  나도 신문사라는 집단을 벗어날 때 후회와 같은 모든 감정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다시금 대학신문 기자가 되기 이전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항공대신문 수습기자부터 선임기자까지. 1154호부터 1180호까지. 신문사 제의를 받았던 2017년 5월 7일부터 2019년 12월 4일까지. 약 600매의 원고를 작성하고 3년간 교내외를 취재했던 나는 더 이상 위와 같은 활동을 한 항공대신문 김세종 기자가 아닌, 한 명의 항공대 학우로, 한 명의 항공인으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뿌듯함, 후련함, 그리고 후회와 같은 복잡한 감정을, 언젠가 나에게 다시금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누군가에게 긴 여운을 남겨주고 싶은 이 글과 함께 나의 대학기자 생활을, 한국항공대학교 신문사 활동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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