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5월 선물의 배
럴당 가격이 -37.6달러까지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른
바 ‘마이너스 유가’로 이는 1983년 뉴욕상업거래소가 원유
를 거래한 이후 최저가였다. 이날 WTI의 5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 종가인 배럴당 18.27달러 대비 하루 만에 약 56달
러나 폭락하였다. 미국 경제방송 CNBC의 간판 앵커인 투
자전문가 짐 크레이머는 “말 그대로 더 이상 기름을 사서
놔둘 곳이 없다.”고 전했다. 이러한 원유 포화상태는 사우
디와 러시아의 공격적인 원유 공급으로 시작되었다.

▲ 미국 택사스주에서 원유를 시추하고 있는 석유 굴착기와 펌프 잭의 모습이다. 출처: 뉴시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전쟁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악재를 경험하게 된 석유업계
는 생산량 조정을 위해 OPEC+간의 감산 합의를 논의하였
다. 사우디를 앞세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
원국이 모인 OPEC+는 3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 150
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통해 공급량을 줄여 유가를 끌어올
리기 위한 합의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국 정부와
셰일 업체를 겨냥하여 감산을 거부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합
의는 무산되고 말았다. 국제유가가 높게 유지되면 미국의 셰
일기업들이 이익을 보기 때문에, 생산량을 높여 유가를 낮춰
아예 셰일가스 기업들을 파산시키겠다는 것이 러시아의 전
략이었던 것이다. 합의가 불발되자 화가 난 사우디는 공격적
인 증산으로 맞대응을 시작하였다. 하루 970만 배럴을 생산
하던 양을 1000만 배럴 이상으로 늘리고 전 유종에 대하여
20%의 가격을 내리는 맞불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치킨 게임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산 원유 7700만 배럴을 매입하는 등 여러 차례의 완화 노
력에도 걷잡을 수 없는 원유 가격의 하락을 낳았다. 같은
달 22일 20달러 선까지 무너진 국제 유가는 러시아의 기존
목표에 따라 미국의 생산 감소를 불러일으키는 듯 했지만
문제는 원유의 생산원가에 있었다.


  유가전쟁의 교착상태는 OPEC 회원국들 중의 상당수를
위험에 빠뜨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 이라크, 알제리,
리비아, 앙골라, 베네수엘라 등 6개의 나라들을 “흔들리는
나라들”로 명시했다. 이들은 저유가를 이기지 못하여 재무
구조 등이 취약한 순으로 재정적 타격을 입었다. 일부 산
유국들은 신용등급마저 강등되었다. 달러 패권을 쥐고 있
으면서 글로벌 IT 기업을 보유하고 군사산업과 바이오산
업 금융산업 등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이나 발달한 군수산
업과 각종 지하자원, 유럽으로의 안정적인 천연가스 공급
망 등을 지닌 러시아와 다르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
가 재정의 상당수를 원유 수출에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최대 산유국으로서 호기롭게 생산량을 늘렸던 사우디마저
치명적인 재정난을 입게 되었다.


역대 최악의 유가 급락에 합의된 감산 조치
  OPEC+는 지난달 12일 코로나 19 사태에 따른 유가 폭
락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5~6월 두 달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 감산에 합의하였다. 러시아는 합의 직전까지도 미국
의 ‘하루 200만 배럴 가량의 원유 생산량이 줄고 있으니 다
른 나라도 동참해라’라는 주장에 대해 시장 안정을 목표로
한 감산과 수요가 줄어든 결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며
미국의 감산 설득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합의에 성공한 감산 조치에 힘입어 최근 국제유가
는 3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달 14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의 6월 인도분은 전날
보다 배럴당 2.27달러 급등한 27.5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7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도 베럴 당
31.26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정
책의 완화로 인한 경제활동과 최대 석유 소비국인 중국의
위축되었던 산업생산의 재가동에 따른 기대감 등이 추가
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제 유가 급락… 정유-조선업 큰 타격
  지난 달 원유 가격의 하락에 기업들은 웃지 못했다. 국내
정유사의 경우 원유 가격은 하락하였지만 국내 수요가 줄
어든 탓에 석유제품이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재고로만 쌓이
면서 위기를 맞았다. 올 1분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
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영업 손실은 총 4
조 3775억 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전체 벌어들인 돈에 버
금가는 수치이다. 한 정유 업계 관계자는 “마이너스 정제마
진이 지속되면서 실적에 대한 눈높이가 매주 낮아지는 상
황으로 2분기 적자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월 초 WTI의 선물 가격은 배럴 당 46.75달러였다. 현재
원유 가격이 오름세에 있긴 하지만 아직 감산합의가 진행
되기 전 수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급변하는 원유의 가격
은 국내를 포함한 세계의 많은 기업들을 도산 위기에 몰아
넣었다. 조속히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세계 산업이 활성화
되어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날이 오기를 기
대해본다.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