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 삶의 보람이다. 종으로 횡으로 엮어 가면서 인류의 정신 문화사를 내 나름으로 그려보고 싶다. 작년 여름에는 인도와 네팔을, 지난겨울에는 터키와 그리스를 떠돌았다. 올여름, 내 눈은 자연스럽게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창궐이 발목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국내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이미 제법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낯선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야……. 옛 가야 지역이 머리에 떠올랐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 자리한 김해, 고령, 창령, 함안 등 별반 특색 없어 보이는 지역에 마음이 쏠렸다. 뭐 특별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그러면서도 한 번쯤은 가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신라 경주 고분군을 닮은 가야 고분군을 스치듯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두 번에 걸쳐 옛 가야 유적지를 꼼꼼히 살펴보고는 내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어느 날 하늘에서 신령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구지봉에 가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하고 노래하며 춤추면 임금을 얻으리라. 아홉 추장이 그리했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 상자가 내려왔다. 상자 안에는 여섯 개의 황금알이 있었는데, 알에서 깨어난 여섯 아이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첫 아이가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이다. 이 설화로 인하여 흔히들 가야를 육가야 연맹체라고 여긴다.

 가야에 대한 정사(正史)는 없고, 그 사료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일본서기』, 『삼국지 위서 동위전』 등에 파편으로 남아 있어, 그 실체는 안개 속이다. 그래서 가야의 역사를 구성하는 데는 고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야의 고분에서는 왕관, 복대, 귀고리, 마구 등의 부장품뿐 아니라 수많은 철기와 동기 그리고 토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는 바람개비 모양의 파형동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이전에는 오직 일본에서만 출토된 것이어서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밝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발달한 가야의 순장 문화는 당시의 생활 모습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죽은 자가 역사를 대변한다고나 할까?

 가야는 기원전 1세기 무렵 낙동강 하구 김해 지역에서 성립하여, 약 6세기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기원후 562년까지 존립했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가야 제국(諸國)은 여섯이 아니라 열둘 이상이며, 각 소국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분분하다. 각 소국들은, 가야라는 이름 아래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저마다의 독특한 문화를 일구었다. 가야의 토기는 우아하면서도 섬세하다. 특히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일컫는 바, 초기부터 발달한 철 주조 능력은 600년 가야를 지탱한 저력이 되었다.

 가야의 전성기 영토는 김해, 고령,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부산과 남원, 장수에까지 이른다. 일본 열도는 물론이고 중국의 남경에까지 해상무역 활동을 전개했다. 가야는 비록 단일 고대국가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00년 가까이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당과 왜(倭) 사이에서 당당하게 하나의 국가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국시대는 사국시대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며, 소설가 최인호는 󰡔제4제국󰡕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김해시의 수로왕릉

 허황옥의 전설도 흥미롭다. 수로왕이 나이가 차서 신하들은 혼인할 것을 간청한다. 수로왕은 “짐은 하늘이 시켜 여기 내렸다. 부인도 하늘이 주실 것이니, 걱정 말라.” 하며, 신귀간으로 하여금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게 하여 허황옥을 맞이한다. 허황옥은 자신이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고자 왔다 한다. 지금 수로왕비 허황옥의 릉 앞에는 파사석탑이 소박하게 서 있다. 그것은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돌들로 쌓았다고 하는데, 그 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다 한다. 하지만 허황옥이 정말 인도에서 왔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로 학자들은 수로왕/왕비에 대응되는 하늘/바다의 상징적 의미로 파악한다. 나는 여기서 가야의 활동 무대를 상상해 본다.

 가야 고분군 사이를 거닐면서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경주의 고분군이 평지에 있는 반면, 가야의 고분군은 산자락을 타고 조성되었기 때문에, 마치 제주도 오름에 오르듯 산뜻한 기분이 든다. 그것들은 몇 남지 않은 역사 기록의 사이를 메꾸는 수수께끼의 암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을 건설한 자들의 육체적 고통과 억울하게 순장당한 이들의 호소가 들리는 듯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역사적 가치를 간과할 수 없다. 경상북도는 오랫동안 가야 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해 왔다. 만약 계획대로 된다면, 2021년 현장실사를 거쳐 2022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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