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터키와 그리스를 여행했다. 이스탄불 직항 노선이 인천 공항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너무 비싸다. 경유 노선을 타면,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경유하느니 차라리 느린 여행을 택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모스크바를 거쳐 이스탄불로 향했다. 이르쿠츠크에서 한겨울 바이칼호 한가운데를 걸어다녔다. 꽁꽁 언 호수 위를 걷자니 가슴이 선득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향에 온 듯 마음이 따뜻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상트 바실리 성당 앞에 서니, 서유럽과는 다른 동방정교의 멋에 도취 되어 꿈꾸는 듯하다.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동서양 문화의 오묘한 조합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와 모스크바를 거쳐 와서인지 그 독특함이 더욱 눈에 뜨였다.

 이스탄불에는 로마 문화의 정수가 스며 있고, 동방정교의 순박한 아름다움이 녹아 있으며, 무슬림의 엄숙한 문화가 꽃피우고 있다. 기원전 660년 그리스의 비잔티움으로 시작한 이 도시는,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고, 1453년 무슬림이 점령하면서 오스만제국의 중심 도시 ‘이스탄불’이 되었다. 이때 동방 교회의 정통은 러시아로 옮아갔다. 이 도시는 1923년 터키 정부 수립까지 무려 1,600년 가까이 동로마와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천년고도 경주, 북경, 교토를 제치고 세계 1위이다. 이 도시는 도시의 대명사로 통해서, 그냥 ‘이 도시’로 불렸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지만, 이스탄불이야말로 명실상부 터키 제일의 도시이다.

 흑해와 마르마라해(지중해로 연결되는)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이스탄불을 둘로 갈라놓고 있다. 이 해협의 서안(西岸)은 유럽이며, 동안(東岸)은 아시아이니, 이 도시는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셈이다. 이 도시는, 고대 중국의 무역상들이 로마로 향하는 실크로드의 길목이다. 수천년 동안 여기에서 동서양의 문물이 모였다가 나누어지며 변모하고 정착해 왔다. 이 도시의 ‘그랜드 바자르’는 옛 실크로드 시장의 잔재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유리 공예품이나 도자기 등의 화려한 장식품으로 가득하다. 1883년 완공된 유럽 최초의 대륙횡단열차도 프랑스의 파리에서 출발하여 이 도시에 이른다. 열차는 다시 시베리아횡단 열차로 연결된다.

 이 도시에는 두 개의 거대한 궁전이 있다. 돌마바흐체와 톱카프이다. 돌마바흐체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지어진 반면, 톱카프는 전형적인 무슬림 방식으로 지어졌다. 내게는, 술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톱카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궁전은 비룬, 엔데룬 그리고 하렘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궁궐이 외전, 편전, 내전으로 구성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것은 외무를 담당하는 곳과 내정을 논의하는 곳 그리고 왕가가 생활하는 공간이다. 전체적으로 궁전은 생각보다 덜 화려했다. 기하학적 무늬의 장식에서 도리어 무슬림 특유의 단순성이 느껴졌다.

 아마도 대부분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은 하렘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렘을 보려면 따로 입장권을 사야했다. 주저 없이 입장권을 샀다. 하렘은 많은 방과 거실 그리고 목욕탕, 화장실과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렘에서는, 우리나라의 규방(閨房)과 같은 아녀자의 정결함이  느껴졌다. 하렘을 사치와 향락의 온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에 따라 그러한 때도 있었겠지만, 본래 하렘은 그런 공간이 아니라고 한다. 하렘은 금단(禁斷)의 장소를 의미한다. 유럽인들이 자기네 식으로 꾸며낸 은밀한 상상을 하렘에 부여하여, 그러한 오해가 생겼다고 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영향도 컸다. 본래 민담이란 좀 야한 속성이 있다. 실제로 하렘에서는 엄격한 규율로 풍기를 규제하였다고 한다. 여전히 그것을 사치와 향락의 온상으로 그리는 그이 많은데, 편견의 소산이 아닐까?

 이 도시의 멋은 무엇보다도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모스크에서 풍겨난다. 거기에는 정방형 건물과 그 지붕을 장식하는 둥근 돔 그리고 건물 사방에 세워진 첨탑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있다. 이 도시에는 참으로 많은 모스크가 있다. 멀리서 도시를 바라보면 돔과 첨탑들이 어우러져 신비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웅장함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안에 들어가면, 고요한 엄숙함에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사원이나 터키에서 가장 크다는 쉴레이마니예 사원도 그러하지만, 역시 아야 소피아 사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야 소피아 사원은 서기 360년 동로마 제국 시대에 동방정교 성당으로 세워졌다. 그것은, 이스탄불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선 1453년 모스크로 전환한다. 무슬림은 건물 주위에 첨탑을 세우고, 내부의 모자이크 성화(聖畫)에는 회벽으로 바르고 그 위를 코란의 문자로 장식했다. 성화의 아름다움을 차마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이제 사원 아래 들어서니, 거대한 돔에 동방정교의 성화가 찬연하다. 그 아래 걸려 있는 네 개에 검은 천이 눈에 선연히 들어온다. 거기에는 이슬람의 4대 칼리프의 이름이 금색으로 쓰여있다. 동방정교와 이슬람교의 문화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지난겨울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터키 정부는 아야 소피아에서 종교의 성격을 지우고 박물관으로 지정했다. 순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슬람주의로 경도된 터키 에르도안 정부는 아야 소피아를 86년 만에 모스크로 변경했다. 이슬람 예배 동안은 돔의 동방교회 성화는 천으로 가린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 약세를 모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어서 터키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동서양 사이의 도시 이스탄불에 세워진 아야 소피아는 새로운 운명의 시험대에 올랐다. 2013년에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관통하는 마르마라이 지하철 해저터널이 완공되었고, 2016년에는 자동차 전용 터널 아브라시아 해저터널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이스탄불은 오늘날까지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이 도시’가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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