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오랜 시간 장기화함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소위 ‘마스크 빌런’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영업자와 알바생들이 방역수칙을 지켜달라고 고객들에게 안내하는 것이 주 업무 중 하나라고 할 정도이다. 단순한 말다툼으로 끝나면 다행으로, 물리적인 다툼으로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8일 충남 홍성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편의점 점주를 폭행한 30대가, 또한 같은 날 광주에서는 마스크 미착용을 이유로 다투던 중년 부부와 고등학생이 입건되었다.

김강현 기자

 가장 유명한 난동을 꼽자면 2호선 당산역에서 50대 남성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승객들에게 폭행을 행사한 사건일 것이다. 이 남성은 지난 4일 검찰에 구속 송치되었다. 그럼에도 해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는 행정명령에 시위가 이어지는 것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우들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30일 하루에 5,413명의 확진자가 쏟아졌고 이탈리아 또한 다시 8월 말 일일 확진자 수가 1,300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코로나 19 재유행이 다시 한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서는 3만 8,000명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시위가 발생하고 있지만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아시아권에서는 마
스크 반대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과 참으로 대조된다.

 

  전문가들은 동양에서 마스크와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복면을 구분하지만, 서양에서 마스크가 복면과 같다고 생각하는 인식 차이에서 이러한 차이가 벌어진다고 분석한다. 나는 이것이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동서양의 사상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마스크 반대론자들의 주된 주장은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어떠한 명령을 따르도록 하는 것에 대해 사람이 반감을 품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동양권의 문화에서는 딱히 이러한 사회 모두가 함께 실천하는 일에 대해서 반감을 품는 일이 없다. 개인주의가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공동체주의가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 코로나에 안 걸리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위해 착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다. 자기를 우선시하는 생각임에도 이는 남들의 비판을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가족과 이웃을 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남들을 배려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 또한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서양은 어떠한가.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나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받아들이며 죽을 사람은 죽고 살을 사람은 산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공동체주의가 지금과 같은 국가 또는 세계 단위의 재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보호와 존속을 위해 행동하고,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위기를 다른 집단보다 더 빠르게 극복해나갈 수 있다. 동양에서는 예시를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 동양에서만 있던 일이 아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패배로 프랑스는 당시 GDP의 25%에 해당하는, 50억 프랑의 막대한 배상금을 갚아야 했다.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5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1년 8개월 만에 갚아 그를 놀라게 했다. 또한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 치하에서 에티오피아를 침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경제 제재를 가하였는데, 이는 이탈리아 국민의 애국심과 단결심을 높여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을 일으킨 바 있다. 두 예시 모두 외세의 침략이라는 극단적인 공통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람들 사는 곳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고 반증할 수 있겠다.

 

 물론 공동체주의가 좋은 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공동체주의는 전체주의로 흑화하여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할 수 있다. 전체주의의 물결이 전 세계를 크게 휩쓸고 배척과 말소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상 현대 사회에서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이를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과 같은 세계 단위의 재난 상황에는 가끔 개인주의를 접어두고 공동체를 위하여 행동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가족, 이웃, 그리고 얼굴은 모르지만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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