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유행은 벌써 9개월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던 코로나19의 유행은 우리의 명절 추석마저 바꾸어놓았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올 추석에는 귀성하지 말자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으며, 차례상 역시 간소화됐다. ‘언택트’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사회 다방면으로 큰 변화를 일으킨 코로나19, 이번 추석에 코로나19가 일으킨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불효자는 옵니다’

 추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이다.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귀성길에 오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추석에도 예년과 같은 민족대이동이 일어났다면 코로나19의 확산은 도저히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고 많은 사람의 귀성을 막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는 광범위한 캠페인을 펼쳤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문구는 많이 들어봤지만,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문구는 올 추석 처음 등장하였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추석 때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는 취지의 문구이다. 이러한 이색 문구는 강원도에서 시작되었다.

 동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강원도 정선군에서는 9월 7일부터 8일까지 직원과 군민을 대상으로 고향 방문 자제 현수막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하였다. 이 공모에서 정선군의 조대현 주무관은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를 재치 있게 바꾸어서 제출한 것이다. 조 주무관은 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하였음을 밝히며, “큰 관심을 받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말하였다.

 이러한 이색 현수막은 9월 초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한 코로나19 대응 화상회의에서 비롯되었다. 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오는 게 효도라는 것을 홍보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공유해 붐을 조성해보자”고 하였다.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마스크를 쓰고 차례를 지내고 있는 모습 (출처 : 연합뉴스)

비대면으로 추석을 보내는 법

 이처럼 코로나19는 효자의 기준도 바꾸었다. 반드시 얼굴을 마주보며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만이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화상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벌초 대행과 같은 ‘비대면 추석’의 모습도 흔히 보였다.

 올 추석에는 벌초 대행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 직접 벌초를 하자니 코로나19의 확산이 무섭고, 안 하자니 묘의 관리가 걱정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벌초 대행 서비스는 우리가 직접 벌초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청 받은 봉분에 업체가 찾아가서 벌초를 한 뒤 인증 사진을 찍어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업계에 따르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배 가까이 신청량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최대한 고향 방문을 자제하려는 국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차례상에서도 코로나19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도 줄고, 차례상도 간소화된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문화의 대표 격인 종가들마저 이번 추석에는 형식보다는 실속과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00년을 이어온 경북 안동시의 종가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원주변씨 간재종택은 해마다 100여명의 후손이 찾아와 왁자지껄 붐볐으나, 올해 추석은 달랐다. 인근에 사는 10여명 남짓한 친지만 모여 차분한 추석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1대 종손 변성렬 씨(61)는 “2주 전 문중 회의를 거쳐 서울 등 외지의 후손은 추석 차례에 참석 안 해도 된다는 것을 결정했다”며 “후손들에게 오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도 다 보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은 “무엇보다 후손들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코로나와 함께 급증한 배달 문화

 이번 추석에는 배달 시장이 크게 확대되었다. 코로나19로 차례상도 간소화되고, 외식마저 자제하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이다. 직접 찾아뵙고 건네주던 명절 선물도 배달해주는 업체마저 찾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먹거리 배달앱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뿐만 아니라 쿠팡이츠 등 후발주자들이 배달전쟁에 참여하며 매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먹거리 배송뿐 아니라 마켓컬리와 같은 새벽배송 서비스도 굉장한 열기를 띄고 있다. 쿠팡은 추석명절에도 ‘로켓배송’을 정상 가동하여서 주문 다음날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이마트몰과 SSG닷컴은 오프라인 점포와 마찬가지로 추석명절 당일만 쉬고 ‘쓱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뜩이나 치열하던 배달 서비스 시장은 ‘비대면 추석’을 기점으로 더욱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배송 서비스는 추석 선물 배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위에서 언급한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 뿐만 아니라 G마켓, 11번가에서도 추석 선물을 배송해준다. 이러한 배송 서비스 덕분에 코로나로 크게 위축되었던 선물과 먹거리 업계에도 잠시나마 숨통이 틔워졌다.

 

 예로부터 역병이 돌 때에는 제사를 안 지냈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도 허례허식에 집착하다가 소중한 건강과 실익을 잃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이번 추석 문화가 내년에도 지속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번 간소화된 추석 문화는 앞으로도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간소화된 추석은 ‘명절 스트레스’마저 완화시켜주었다. 수많은 친인척에 둘러싸일 일도, 차례상에 고통 받을 일도 자연스레 줄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차례상과 선물 세트에 집착하는 일도 줄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바꾸었듯, 분명 우리 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처럼 허례허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과 안부를 나누고, 부모님과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으로 풍요롭고 넉넉한 한가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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