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민 선임기자

“와, 나 진짜 한 해 동안 뭐 했냐. 우리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매년 연말이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묵직한 한마디이다. 이 말이 나온 뒤 술자리는 두 가지 분위기로 나뉜다. 첫째는 모두가 공감하며 침울해지는 분위기, 둘째는 공감하지만 오늘을 즐기자는 분위기. 한 해가 별 성과 없이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와 고민에 빠져드는 이들의 나이는 고작 20대 초중반이다.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과정까지 부정되는 삶을 살아왔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미 결과주의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과정에 만족감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실패와 무성과에 있어서 덜 불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문제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긍정적인 삶을 살면 해결될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행복한 일이 생겨야 행복한 것처럼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상황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모두들 어릴 때부터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은 지겹게 들어왔을 것이다. 반복되는 긍정 조기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지금도 긍정적인 사람에 속하는가? 안타깝게도 긍정은 가진 자의 여유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한테 차였을 때 본인에게 문제가 없는 사람만이 긍정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형편이 어렵거나 외모에 자신 없는 사람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거절당했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좋아하는 사람을 잠시 마음에 품고 고백을 위해 용기를 낸 과정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결과에 부정적인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필자는 긍정심리학에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억지긍정이 아니라 이기적 정신승리이다. 억지긍정이 연속되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어서 모든 게 빠르게 무너진다. 이기적 정신승리는 억지긍정보다 더욱 강한 자기통제 방법이다. 시험결과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억지긍정의 심리는 “시험에 망했지만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이고, 이기적 정신승리의 심리는 “난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문제가 이상하게 나왔네 이건 뭐 잘 보는 게 이상한거지.”이다. 두 심리의 차이를 알겠는가? 우리나라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우울의 원인을 스스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남 탓을 하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사태의 원인을 찾을 때 본인이 최선을 다했다면, 내가 아닌 타인과 상황에 전가시키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더하여 과정에 있어서 본인이 잘한 부분을 찾아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부정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 무조건 남 탓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주장하는 이기적 정신승리의 적용 대상은 문제 상황의 원인이 모호한 경우이다. 본인 탓이 분명한 경우에는 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더 나은 나를 위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인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모든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우울감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기적 정신승리라는 것이다. 쓸데없이 정의롭고 자기반성적인 모습은 스스로를 위축시킬 뿐이다. 오히려 뻔뻔해지고 나 자신을 아껴주고 보호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모두가 올해를 되돌아 볼 때 열린 열매보다 심은 씨앗을 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울감과 자괴감이 가득한 청년들의 어두운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왜 항상 실패를 본인 탓으로 돌리며 과정조차 실패로 물들이는가? 억지로 긍정적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본인이 만든 고통 속에서 살지는 않길 바란다. 자조적 자기비하보다는 이기적 정신승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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