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수에즈 운하 내에서 좌초되어 수에즈 운하가 6일 동안 차단되는 역대의 사고가 일어났다. 수에즈 운하는 파나마 운하와 함께 대양과 대양을 잇는 가장 중요한 두 운하 중 하나로, 이번 사고로 인해 세계 물류의 약 12%가 정지되고 하루에 약 10조 원의 피해가 일어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수에즈 운하 내에 좌초된 에버 기븐 호 (출처 : CNBC)

 

 

수에즈 운하의 파란만장한 역사

 수에즈 운하에 대한 개념은 고대 이집트 왕조 때부터 존재하였지만, 기술력의 한계로 강과 강을 연결하는 방식의 간접적인 방식에 불과하였다. 기원전 19세기 이집트 제12왕조의 세누스레트 3세가 처음으로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기원전 15세기와 13세기에 각각 또다른 시도가 있었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가 처음으로 수에즈 운하를 완공하여 약 1천 년간 운하는 주요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지금의 수에즈 운하는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진행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1805년 메흐메트 알리 파샤가 오스만 제국령 이집트의 대총독 자리에 올랐고, 그는 유럽과의 적극적인 접촉과 근대화를 추진하여 이집트는 1841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하게 된다. 이집트 독립 이후 프랑스는 이집트와의 친선 관계를 추진하며 1858년 만국 수에즈 해양 운하 회사를 설립하며 수에즈 운하의 건설을 추진한다. 프랑스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총 40만 주의 주식을 발행하고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려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팽창을 경계하는 영국의 견제로 인해 주식을 매입할 예정인 다른 국가들이 매입을 포기하면서 17만 주의 주식을 이집트 정부가 강제로 덤터기 쓰면서 공사가 시작되었고, 공사는 10년 만인 1869년 11월 17일 끝나게 된다.

 그러나 운하가 개통된 지 2년 만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고, 프랑스가 전쟁에서 참패하며 프로이센에 거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할 위기가 닥치자 프랑스는 이집트 지원에서 발을 뺀다. 덤터기 쓴 17만 주로 인하여 수에즈 해양 운하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되어버린 이집트 정부는 프랑스의 지원이 없어지자 재정 폭탄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보유 지분 17만 주 전부를 시장에 내놓게 된다. 인도와 중국 진출에 집중하고 있던 영국 정부는 이 주식을 전부 매입하였고, 수에즈 운하는 영국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영국은 1882년 이집트에서 반제국주의 시위가 벌어지자 운하 보호를 명목으로 군대를 진주시킴으로써 이집트는 자연스럽게 영국의 속국으로 편입되었다.

 약 70년 후, 1952년 친영 이집트 왕정이 쿠데타로 인해 무너지며 가말 압델 나세르가 집권하게 되며 수에즈 운하의 소유자는 다시 바뀌게 된다. 1956년 가말 압델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였고, 가만히 수에즈 운하를 뺏길 생각이 없던 영국은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손을 잡고 이집트를 침공하며 제2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공산권과 자유 진영의 두 맹주 미국과 소련의 압박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은 완전히 이집트의 소유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수에즈 운하가 위치한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이 장악함으로써 운하가 이스라엘-이집트의 국경선이 되었다. 두 국가 간 산발적인 교전으로 인해 운하는 8년 동안 폐쇄되었지만 70년대 말 두 국가의 국교 정상화로 인해 시나이 반도가 이집트에게 돌아옴으로써 수에즈 운하는 다시 개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에즈 운하 최초의 차단 사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수에즈 운하에 지금까지 사고가 한 번도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박 한 척으로 인해 운하가 완전히 차단된 경우는 이 사건이 최초이다. 지난 23일 좌초된 에버 기븐 호가 정상화되어 움직일 수 있게 된 29일까지 총 672억 달러, 한화 약 76조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북쪽 출입구인 지중해와 남쪽 출입구인 홍해 양쪽에서 총 367척의 선박들이 운하가 정상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사고가 장기화 되면서 해운사들 중 일부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경로로 바꾸기도 하였다. 또한 수에즈 운하가 차단된지 단 이틀 만에 세계 유가가 6% 상승하고 물류는 12%가 정지하는 등 엄청난 피해가 적립되었다.

 

수에즈 운하의 운하가 재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선박들(출처 : Flightsim.to)

 이 사건의 책임 소재와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 문제 역시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집트 정부는 3월 30일 사고 원인을 조사하며 에버 기븐 호의 선주에게 책임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동시에 오사마 라비 수에즈 운하 관리청(CSA) 청장은 현지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로 이집트의 평판이 손상돼 마땅히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며 10억 달러, 한화 약 1조 1천억원의 배상금을 청구할 것이라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고 당시 불었던 강풍이 주요 원인이라 꼽히고 있지만, 이집트 당국은 선장과 항해사의 운항 실수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집트 정부의 통행 규정에 따라 수에즈 운하 통과 시 각 선박은 최소 10만, 최대 30만 달러의 통행료를 내야 하며, 이집트인 전문항해사를 의무적으로 탑승시켜야 한다. 그러나 전문항해사의 모호한 선내 책임 및 역할과 이집트 법에서는 수에즈 운하 운항 도중 사고 원인이 이집트인 전문항해사의 실수라 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편 에버 기븐 호의 선사*인 대만 에버그린 사는 에버 기븐호에 실렸던 화물의 지연 외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셰후이취안 에버그린 사장은 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에버 기븐호 사고 관련 배상 문제에 대해 “우리는 운항사이기 때문이 일절 책임질 일이 없다”고 말함과 동시에 이번 사고로 인한 배상 책임이 전적으로 선박 소유주인 일본 쇼에이 기센에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에버 기븐호 사고는 수송 중에 일어났으며 사고의 경우 계약상 선주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쇼에이 기센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였다.

 에버 기븐호는 일본 MS&AD의 선제보험과 영국 UK P&I의 책임보험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로이터 통신은 선박의 보험 가치를 1억~1억 4천만 달러의 수준으로 추측한다고 보도하였다. 쇼에이 기센과 보험자 UK P&I는 이러한 배상 책임에 대한 입장을 현재까지 표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해상에서의 손실 비용에 대해 소유주와 보험업자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공동해손이 선언되면 보험금 지급이 복잡해져 배상 절차가 완료되기 전까지 수년이 소요될 것이라 예측하였다.

 

  일주일 만에 수에즈 운하의 운행이 재개되어 세계 경제는 다시금 안정화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연 사태로 인한 정체 사태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노스이스턴대학교의 스티븐 플린 정치학과 교수는 “이 정도 규모의 1주일 운송 차질은 상황이 정리되고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 60일이 걸릴 것”이라 전망했다. 반면 한국 조선사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뜻밖의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유니버셜조선공사가 건조한 쇼센미쓰이의 화물선 와카시오호가 모리셔스 인근 해안에서 좌초되어 약 1천 톤의 기름이 유출된 사건에 이어 이번 사고가 선박 자체 결함으로 밝혀질 경우 일본의 조선 공업 신뢰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의 잦은 고장으로 인해 중국의 발주 물량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과 더불어 일본산 선박 신뢰도의 저하가 겹친다면 국내 조선사의 몸값이 더욱 올라갈 것이고 침체되었던 국내 조선 업계가 다시금 활기를 띄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선사 : 선박 소유주(선주)로부터 배를 빌려 해상운송업을 하는 선박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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