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우리나라에는 4개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서울관(경복궁 옆), 덕수궁관, 과천관 그리고 청주관이 그것이다. 한국항공대학교 학보 지난 호에서는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를 소개했다. 이번 호에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대를 보는 눈: 한국 근현대 미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3, 4, 5, 6 네 전시실에서 우리 근현대 미술 작품 300여 점을 2022년 7월까지 관람할 수 있는 대규모 상설전이다.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100여 년에 걸친 우리 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미술 애호가라면 작품을 음미하며 역사의 변화에 대응하며 예술을 창조한 우리 화가들의 영감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미술에 전혀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작품을 통해서 시대 상황을 짐작하며 우리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관람해 보기를 권유한다.

 

 5층 3전시실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작품은 고희동의 「자화상」이었다. 고희동은 동경미술학교에서 수학(修學)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다. 북촌에 가면 ‘고희동 미술관’이 있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그가 살던 집을 복원 공사하여 미술관으로 열었다. 한옥의 멋을 살리면서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그가 직접 설계했다고 한다. 최초의 서양화가라고 하지만, 나중에 그는 한국화에 더 열중하였다. 유화보다고 더 아름다운 고희동의 한국화가 생각났다. 중인 출신의 화가 채용신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는 위정척사파의 민족 지사들을 주로 그렸는데, 우리가 아는 최익현, 황현 등의 초상화가 바로 채용신의 작품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고종의 어진(御眞)을 볼 수 있다.

비우(Universe Misery); 박석원(1969)

 5층 전시관에는 이인성,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등 낯익은 작가들의 작품들도 눈에 띄었으나, 70년대를 넘어가면서 전개되는 실험작품들은 다소 생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작품들은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기에, 흥미로웠다. 그 질문에 나름대로 답변을 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그 중 유독 나의 눈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마치 파괴된 지구처럼 보이는 조상(彫像)이었다. 오늘날 파괴되는 지구 생태계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작가와 제목을 보았다. 박석원의 비우(Universe Misery)라는 작품이다. 말을 풀어보면 ‘비참한 우주’가 될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내 생각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2층으로 내려오는 중간 전시실에서 뜻밖의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2021 뉴미디어 소장품 기획전: 불합리한 환상극』이 그것이다. 남아프리카 출생인 윌리엄 켄트리지, 인도 출신의 날리니 말리니, 중국 출신의 양푸둥 등 세 사람의 작품으로 구성된 특이한 전시회였다. 전시라기보다는 영상 실험극이나 실험 설치물이었다. 어떤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희한한 몸놀림의 그림자극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실험 영화다. 또 어떤 설치물은 동물 그림이 그려진 수십 개의 둥그런 투명 플라스틱 통이 조명을 받으며 돌아간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흥미롭고 신기하며 기괴하고, 또한 그러한 가운데 묘하게도 아름다웠다. 그것들은 역시 내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 댔다. 허허, 또한 아무려면 어떤가?

 

 3층에는 한국화와 민중예술 그리고 포스트모던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전의 한국 동양화는 80년대에 이르러 ‘한국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한국화에는 분명 동양화와는 다른 우리만의 아름답고 대담한 붓질이 담겨 있었다. 마냥 아름다웠다. 80년대 민중예술은 나의 대학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비록 투박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을 발견하는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 다음에는 만화, 회화,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가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미술 세계가 펼쳐졌다. 여기서는 도리어 그 부질없는 시도에 대해 다소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시대를 앞서간 작가들의 영감을 좇다 보니 힘에 벅차다. 300점이라고는 하지만, 이로써 우리 근현대미술사의 전모를 다 보았다고 하기에는 터무니없다. 시대별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일별(一瞥)했을 뿐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다 감상하고 옥상 야외 정원으로 올라갔다. 정원 자체는 초라하지만, 경치는 일품(逸品)이다. 앞에는 관악산이 우뚝 솟아있고, 뒤에는 청계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5월의 숲이 싱그럽다. 청계산 자락에 자리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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