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묵 수습기자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논란이 뜨겁다. 이미 지난달 16일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건의했을 정도이다. 삼성 일가가 지난달 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 산의 60%를 상속세와 기부 등의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면서 이재용 사면 여론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경제계를 중심으로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서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1일 기준으로 20여 건이 넘는 이 부회장사면 청원 글이 올라와 있다. 동의자가 무려 30만 명에 이른다. 국민 여론도 그리 나쁘지 않다. 여론조사업체 데이터리서치가 지난달 26일 실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2%가 사면에 찬성했다. 몇몇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대체로 10명 가운데 7명가량이 사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면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렇듯 이 부회장 사면론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양측의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국가 경제와 국운이 달린 일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쪽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 례 없는 경제 위기 상황에 따른 ‘위기론’을 강조한다.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 황에서 과감한 투자 결단을 내리고, 민간외교를 통해 코로나바 이러스 감염증 백신 수급의 물꼬를 틀 적임자가 이 부회장이 라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 사면이 단기적으로는 사회적·정치적으로 잡음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및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 역시 국가적 위기 론을 우려하는 관점이다.

 

이번에도 재벌 총수만?

 반면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쪽은 사법적 처벌에 예외를 둬선 안 된다는 ‘원칙론’을 내세운다. 가진 자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없는 자에겐 가혹할 정도로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 사법부의 ‘유전무죄’라는 민낯을 또다시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역대 정부에선 국가 경제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을 여러 차례 단행한 바 있다. 진보정권인 노무현 정부에서도 당시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이 이뤄졌다. 유독 재벌 총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한국형 사면’은 법치주의와 정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종국에는 삼성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 온다.

 

득과 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이처럼 양측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사면 여부를 제대로 논하려면 우선 ‘대통령 사면권’의 취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 야 한다. 사법 선진국에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공익 차원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안에서 시행돼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면권이 행사돼야 하고, 이는 형사사법 체계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치 행위’ 로 간주해왔다.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이뤄진다면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무제한적으로 행사된다면 헌법적 가치 질서와 형사 사법 정의에 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써야 한다. 따라서 이 부회장 사면이 공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막연해 보이는 득과 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삼성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를 고려했을 때 재벌 총수의 직접적 의사결정이 시장에 가져다줄 ‘불확실성의 해소’라는 공익이 더 큰지, 아니면 그로 인해 또 한 번 흔들리는 사법 정의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악영향이 더 큰지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면이 당장 반도체 산업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혐의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이 부회장 사면이 공론화된 시점이 적절한지도 판단해봐야 한다. 국정농단으로 법정구속이 된 지 3개월 정도 지난 상황에서 최근 재계와 종교계 등의 사면 요청이 빗발쳤다. 당장 눈앞에 둔 큰 선거가 없어 정치적으로 부담이 덜 한 만큼 지금이 이 부회장을 사면할 적기로 본 셈이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선 형의 3분의 1을 채운 수형자는 가석방될 수 있다(형법 72조)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올해 추석이면 가석방 요건을 갖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별사면권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이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 사면 논란은 결국 청와대를 향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 사면만큼은 국가적 이익과 공익, 사회적 공감대를 고려해 냉정하게 판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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