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기자의 변

 누구에게나 가슴 떨렸던 처음이 있는 법이다. 2018년도의 나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던 새내기이자 홍일점 막내 수습기자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새로 들어온 수습기자의 기사를 검토해주는 선배이자 정기자가 되었고, 어느새 꼭 하고 싶었던 신문사 국장까지 감사하게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선임기자의 역할로 4년째 신문사에 남아 기사를 쓰고 있는 고학번 선배가 되었다. 1166호부터 1190호까지 총 35부의 신문에 내 이름이 담겨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필자가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신문이라는 생각에 더 그런 것 같다. 나의 흔적이 영원히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아련해져온다.

 

첫 칼럼은 그저 어린애의 흔적이다

 필자가 처음 썼던 칼럼의 제목은 <행복>이다. 3년이 지나 20살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고작 3년 전의 난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낭만이 있었던 아이였나 보다. 힘들 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라는 둥 아이나 할 법한 생각을 칼럼에 담아내던 내가 이젠 삶에 찌들어 버린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지금의 나는 힘들면 포기하라는 말을 칼럼에 담아버리는 재미없는 어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자기객관화가 빠르게 되고 스스로에게 초연해지는 것 같다. 필자는 어느 순간 깨달아버렸다. 행복은 내가 찾는 게 아니고 나를 찾아오는 것임을 말이다. 불행도 마찬가지로 나를 찾아오는 것이기에 결코 개인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필자는 “네가 자초한 일이니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내가 일을 자초하기 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결국 감당해야 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게 아닌가?

 인생 대부분의 순간은 운이 결정 짓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운을 갖고자 노력하던 자에게 더 큰 운이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애초에 아예 없던 운이 노력하던 자에게 기적같이 가는 일이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 불행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불행에 대비했던 사람은 갑자기 큰 불행이 찾아와도 작은 불행으로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행에는 대비하지 않았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더 이상 필자는 노력하면 없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찾아오는 행운과 불행에 대비하면 더 행복하거나 덜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음표에 답해보다

 나는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 그동안 잘 살아온 게 맞을까? 앞으로의 난 행복할 수 있을까? 역시 오래 몸담고 있었던 조직에서 나올 때의 사람은 참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나에게 던져지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딱 한 가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신문사에 지원하길 잘했다는 것이다. 나의 20대 초반 내내 하나의 소속이 되어줬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준 고마운 곳이기 때문이다. 경험의 좋고 나쁨을 떠나 나에게 성장의 발판을 내어준 신문사였기에 고마운 마음뿐이다. 마지막 칼럼을 통해 그동안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었던 소중한 인연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기까지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많은 것을 겪었기에 스스로 성숙해졌다고 자신하며 당당하게 나아가보려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이다. 모두의 기억 속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그뿐이다. 스스로 부족했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매사에 최선을 찾으며 발버둥 쳤던 내가 안쓰러워 동정을 담아 칭찬해주고 싶다.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하려 하니 시원섭섭하여 마침표 찍기가 망설여진다. 그동안의 모든 기억과 추억을 마침표 앞에 남겨두고, 이제는 한국항공대학교의 심지민 학생으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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