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지속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결국 탈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6월부터 시작된 탈레반의 공세는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속절없이 아프간 정부군을 압도하였고, 결국 8월 15일 수도 카불이 함락되며 탈레반의 승리가 확정지어졌다. 이에 미국 등 서구권 국가들의 대피 행렬이 이어지며 또다른 혼란을 낳기도 하였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은 과도정부를 설립하며 자신들의 지배를 확고히 하고자 여러 가지 유화책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프간 내부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탈레반 무장 전사들이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출처: AP통신)

 20년간 이어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시작되었다.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거느리는 테러단체 알 카에다를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미국은 즉시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이를 무시하였고, 결국 미국은 대대적인 침공을 통해 2개월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세속주의 정부를 수립시켰다.
그러나 전쟁의 목표인 오사마 빈 라덴의 확보는 이뤄내지 못하다가 2011년이 되어서야 이루게 된다. 탈레반의 섬멸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전쟁에서 패배한 탈레반은 아프간의 곳곳으로 흩어져 지방에서 세력을 길렀고, 수시로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을 공격하는 것을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인명 피해를 유발하였다. 미군이 주둔을 했음에도 수도와 그 주변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탈레반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미군 철군하다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은 늘어났다 줄어 들었다를 반복하였으나 한때 10만 명을 채우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20년 넘게 해결되지 않는 전쟁은 미국을 이른바 ‘블랙홀’에 빠져들게 하였다. 길어지는 전쟁에 지출은 늘어나고 소득은 없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또한 점점 잃어가자 조 바이든 행정부는 결국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20년간의 전쟁기간 동안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에서는 3,600명의 실종 및 전사자와 27,000여 명의 부상자를 기록하였다. 민간인의 피해는 추산이 불가능하다. 또한, 미국이 이 전쟁으로 지출한 전비는 최소 2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군 철군이 진행됨에 따라 탈레반은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쳤다. 철군이 시작된 5월 3일 이후로 세 달만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며 공식적으로 탈레반의 승리가 확정지어졌다. 이는 9월 1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고, 철군 이후 최소 6개월은 아프간 정부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한 미국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황이었다. 이에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난민들의 피난 행렬과 정부 요인들이 뒤섞이며 아프간은 혼란에 휩싸였다.

 

카불 국제공항에서 수송기에 탑승하려는 난민들의 모습 (출처: 앰피니티뉴스)

 최악의 엑소더스(대탈출)
 미처 대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탈레반이 밀고 들어오자 아프간에서는 ‘엑소더스’를 방불케하는 피난 행렬이 줄지었다. 이는 마치 베트남 전쟁 당시 수많은 ‘보트피플’을 만든 베트남 탈출을 떠올리게 하였다. 다만 베트남 사이공의 경우는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로를 이용한 탈출이 가능하였으나, 아프간은 내륙국이어서 해로를 이용한 탈출이 불가능하다. 또한 카불은 내륙 수도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탈레반이 포위한 상황이어서 육로를 통한 탈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카불의 난민들은 외국의 피난 항공기가 아니면 탈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에 카불 국제공항으로 수많은 난민이 몰렸다. 난민을 이송하는 미 공군의 C-17 수송기에는 134명의 정원을 5배 가까이 넘어선 640명이 탑승하는 등 단 한명이라도 더 탈출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처 탑승하지 못한 수많은 난민들이 수송기 외부에 매달리다가 떨어져 사망하는 등의 참혹한 현장은 각 국가들의 정치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며 난민 대책 수립을 촉구하였다. 한편 이처럼 수송기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난민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포함되어있던 것으로 밝혀져 다시 한 번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각 국 대사관의 철수 작전 또한 긴급히 이루어졌다. 8월 13일까지만 하더라도 수도 카불은 아직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미 국방부의 오판 때문에 기밀자료를 긴급히 소각하고 철수하는 미 대사관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였으며, 쉴 새 없이 미군 헬기가 무언가를 나르는 모습도 관측되었다. 특히 대사관에 걸려있던 성조기가 내려가는 모습은 서방 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도 공군 수송기 등을 긴급 파견하여 외교공관과 교민, 자국 협조 아프간인을 대피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 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또한 8월 15일부로 3명을 제외한 모든 대사관 직원이 아프간을 탈출하였다. 최태호 주 아프간 한국 대사를 포함한 직원 3명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교민 1명을 위해 남았다가 17일 함께 탈출하였다. 우리나라의 철수 작전 또한 영화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5일 오후 아프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아프간 대사관과 우리나라 외교부 사이에 화상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간에 우방국으로부터 ‘지금 즉시 대피하라’는 내용의 긴급 메시지가 날아오며 철수 작전이 시작되었다. 철수는 미국과의 양해각서(MOU)체결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유사시 한국 대사관 철수를 미국이 지원한다’는 내용의 MOU 덕분에 이들은 대사관에서 공항까지 미군 헬기를 타고 이동하였고, 그 후에는 가까운 제 3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현재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 담당하는 모든 업무는 주 카타르 대사관이 대행하고 있다.

 

 탈레반의 유화책… 실상은 ‘공포정치’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전 대통령이 막대한 현금과 함께 8월 15일 해외로 도피하자, 탈레반은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본격적으로 정권장악에 나섰다. 8월 19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재건국을 선포하며 기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멸망을 확정지었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정권을 확고히 하고자 여러 방면에서 친 서방적인 유화책을 펼치겠다고 여러차례 발표하고 있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이후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며 “누구에게도 복수할 계획이 없다”,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범위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할 것” 등의 발언을 통해 서방국가 협력자와 기존 정부 요인에 대한 보복을 하지 않을 것, 여성 인권을 존중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여성 인권의 보장을 약속한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8월 17일, 탈레반은 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젊은 여성을 살해했다. 서부 헤라트 지방에서는 탈레반이 무장한 채로 대학 정문을 지키며 여학생들의 캠퍼스 진입을 막고 있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피의 보복 또한 거세게 이루어졌다. 21일 탈레반은 아프간의 지방 경찰청장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동영상을 공개하였다. 이는 앞서 사면령을 선포하고 복수 행위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것과는 정반대로 대치되는 내용이다. 탈레반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에게도 복수를 감행하였다. 독일 공영방송 도치에벨레에 따르면, 자사 소속 현지인 기자를 잡으려고 집에 들이닥친 탈레반이 기자의 가족 한 명을 죽이며 기자가 자수하지 않는다면 가족을 대신 처형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탈레반은 미리 작성해둔 ‘블랙리스트’를 토대로 정부 요인들과 서방 국가 협력자들을 ‘부역자’라는 명목 하에 색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기반으로 ‘신정국가’를 설립하고자 하고 있다. 헌법과 법치주의에 기반을 둔 정부가 아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르는 정부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극단주의 원칙으로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 다만, 이미 수 천 조원의 비용을 들여 군사적, 인도적 원조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난민 문제 또한 다시 붉어지며 더 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덤이다. 국제 사회는 결국 아프가니스탄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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