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 스포츠와 연예계가 학교폭력으로 뒤숭숭했다. 첫 시작은 여자배구였다. 사실 여자 배구는 11년 만에 외국리그에서 흥국 생명으로 복귀한 ‘배구 여제’ 김연경 덕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 국가대표 쌍둥이 자매로 유명했던 이재영, 이다영까지 김연경과 한팀이 되면서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승은 확정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심지어 무패우승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필자 역시 배구에 관심이 없었지만 김연경 선수의 플레이가 궁금해 배구 영상을 찾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졌다. SNS에 이다영 선수가 김연경 선수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며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것이다. 반면 김연경 선수는 침묵만 지켰고 당시 기자들과 팬들의 의심은 당연히 김연경 선수에게 쏠렸다. 하지만 오히려 쌍둥이 자매가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며 여론은 단숨에 뒤집혔다. 설상가상으로 이다영이 팬에게 인스타 DM으로 시비를 걸었던 것 역시 폭로되면서 자매는 몰락하게 된다. 한편 이다영에게 저격을 당했던 김연경 선수는 기자들의 억측에도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고 경기에만 집중하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 많은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 비록 11년 만의 한국 복귀 후 우승이라는 감동의 드라마는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이력 탓에 실패했지만, 김연경이라는 사람은 인성과 실력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났다. 결국, 이다영은 본인이 싫어했던 김연경 선수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세상에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배구, 야구 등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정말 수많은 연예계 스타들의 학교 폭력이 폭로되었다. 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을 가진 피해자들이 마침 가해자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사회적 움직임에 힘입어 용기를 냈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했던 스타가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면 단숨에 ‘탈덕’(팬을 그만둔다는 은어)했고 피해자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도 했다. 한편 학교 폭력에 걸리지 않은 스타들의 팬들은 혹시나 자신의 최애(가장 좋아하는 스타의 은어)가 학교 폭력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필자 역시 응원하는 야구팀의 선수들이 학교 폭력에 연루되어 있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예전에 미투 운동이 그랬듯 본인의 감정대로 학폭과 관련 없는 스타를 헐뜯는 거짓 폭로가 이어지면서 가해자를 찾는 움직임은 많이 사그라졌다. 다시 사람들은 가해자를 찾아내는 것을 끝내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기획사의 연습생들이 데뷔를 했을 때 그의 과거를 캐는 팬들이 생겼다. 이제는 스타들의 외모와 실력에 현혹되지 않고 우선 그가 학창시절에 문제가 없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기획사들은 JYP 대표 박진영이 그랬듯이 연습생들에게 인성 교육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또 야구계에서는 NC가 김유성 선수의 학교 폭력 이력에도 1차 지명하며 논란이 생겼고 결국 지명을 철회하고 1차 지명을 반납하며 큰 손해를 보았다. 그 사건 이후 각 구단의 스카우트 팀들은 더는 학교 폭력이 있는 선수를 뽑지 않기로 약속했고 선수 지명 전에 선수들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주변인들에게 그 선수의 평소 행실을 물어보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또 스카우트 팀들이 모여서 선수들의 학창시절 생기부를 모두 훑어보며 학교폭력 이력이 있는지 따져보는 절차 역시 필수이다.

 필자는 이제 개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먼저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 모든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나쁘다. 그리고 늦게라도 그들은 죗값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들을 제지하지 못한 사회의 탓이라며 함부로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안타까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인성에 문제가 있어도 그걸 고쳐주지 않고 방치한 사회의 잘못 역시 크지 않을까? 여전히 스포츠계는 선후배 간 소위 ‘똥 군기’라고 불리는 괴롭히는 문화가 이어지고 연예계에서도 아직 선후배 간 군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구조 속에서는 폭력은 끊임없이 대물림 되고 계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이번에 가해자들을 많이 골라냈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똥 군기의 굴레를 없애야 완전한 끝을 보지 않을까? 더는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가해자들이 생길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남겨진 숙제이다.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