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을 찾는 대학생들
페이스북 페이지인 각 대학교들의 대나무숲은 대학생들
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연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준
다는 점에서 여러 대학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대나무 숲의 유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
던 그 설화에서 비롯되었다. 당나귀 귀 같은 임금의 귀를 보
고 비밀을 참지 못해 대나무 숲에 들어가 속 시원히 말 해
버렸다는 복두장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현 시대에 살고 있
는 수많은 ‘복두장’들을 위해 SNS공간에서 새롭게 태어났
다. 2013년 말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약 120여개의
대학가에서 ‘OO대학교 대나무숲’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나무숲은 관리자가 따로 있어 구글 문서나 익명제보
시스템을 이용해 받은 사연을 관리자가 선별해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시스템이다. 관리자는 자신의 나름의 기준을 통해
제보글(주로 욕설, 인신공격 등이 걸러진다)을 판가름한다.
이후 대숲으로 옮겨진 글을 보고 실명으로 활동하는 사람
들이 ‘좋아요’나 댓글을 단다. 주제에 따라 진지해지기도 하
고 실없이 말하듯 골계미를 보여주기도 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내는 공간이다.
등록금에 대한 학우들의 생각과 20대로서의 고민, 이성
과의 교제 등이 사연으로 올라오며 각 대학의 재학생 간 공
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재
학생들이 모두 취업경쟁자라는 점에서 요즘 대학생들은 주
변에 자신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놓거나 토로하지
못하고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상담받는 것을 편하게 여
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여러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지 모습

대나무숲의 여러 사례들

대나무숲에 제보되는 주제는 대학생들의 흔한 관심사인
연애, 학점, 취업 고민은 물론이고, 대학 구조조정 등 다양한
학내외 이슈까지 다양하다. 학내에서 발생한 부당한 내용을
알리는 ‘신문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3월 26일 부산의
모 대학교에서는 ‘MT 불참비’부터 신입생 군기잡기, 성추행
등의 사건이 대나무숲을 통해 공론화된 적이 있다. 한 여학
생이 바가지를 이용해 각종 오물이 섞인 술을 뿌리는 사진
이 올라왔던 것이다. 서울의 대학들에서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에 성추행에 가까운 게임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밝
혀져 비난 여론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대나무숲은 학내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숙명여대는
학생들의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혀 경비원 수를 줄이고 무
인 경비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방침을 철회했다. 당시 대나무
숲에 올라온 수 건의 익명 게시물은 800여 건이 넘는 '좋아
요'와 수십 건의 '공유하기' 수를 기록했다.
대학별로 특색 있는 대나무숲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서울
대는 ‘문학의 숲’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감성적이고 정
제된 글이 많이 올라온다. 지난해에는 자체적으로 ‘대숲문
학상’을 개최할 만큼 학생들의 관심도 높다. 연세대 대나무
숲은 하루 평균 100~150건의 글이 올라오는 활발한 페이지
다. 올라오는 글이 너무 많아서 운영진이 페이스북에 공유
할 글들을 따로 선별해 싣는다. 대나무숲에 공유되지 못한
글들을 따로 모아 놓은 ‘안타깝숲’이라는 별도의 페이지도
있다.
기존 대나무숲 페이지와는 별도로 개설된 어둠의 대나무
숲은 대부분 필터링 없이 가감 없는 제보들을 받는다. 이 때
문에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나 지나친 성적 표현들도 허용
된다. 이런 특성들 때문인지 어둠의 대나무숲 페이지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지난 3월 모 대학교 어둠의 대나
무숲은 운영 종료를 알리기도 하였다. 관리자는 “계정을 만
든 의도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며 재미있게 놀자는 것이었다”며 “노 필터링을 기본으로
걸어두었지만 (중략) 시비가 걸렸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거
친 표현들이 오가며 논란이 커졌고, 이것이 현실에서도 피
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나무숲의 역
기능에 대하여 윤희각 부산외대 교양대학 교수는 대나무숲
에 대해 "학내 대안적 언론으로서 순기능도 있지만, 익명의
이야기들이 일반적인 사실로 확대 해석되면서 대형 오보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사실이 아닌 글로 인해 발생할 제2, 제
3의 피해자를 막으려면 인격 침해를 가할 수 있는 글은 신
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항대인이 생각하는 항대숲
우리학교도 ‘한국항공대 대나무숲’(이하 항대숲)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10월 18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457명의
‘좋아요’를 받으며 운영되고 있다. 본지에서는 우리학교 학
생들 약 230명을 대상으로 대나무숲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
하였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대나무숲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전
학대회나 축제, 그리고 대학구조개혁평가 등의 학내 이슈
들을 확인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과제나 시험 등의 정보
를 공유할 수 있다. ▲같은 학우들끼리 공감대가 잘 형성된
다. ▲학업, 진로, 연애 등에 대한 상담을 잘 할 수 있다. 등

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우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 문턱
을 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대나무숲을 이용해 고민을 털
어놓으면 우리학교 학생들의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며 대숲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
을 보였다.
설문 결과 우리학교 학생들의 항대숲 인지도는 94%에
육박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학우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47%에 이르는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용하는 학우들 중에서도 익명을 요구한 한 학우는 “특
정 인물이나 단체 등에 대한 저격글이 올라오는 것이 불만
이다”며 대숲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앞으로의 항대숲은?
이렇듯 각 대학교의 대나무숲은 대학생들의 소통의 장으
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설문을 토대로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가장 많은 의견은 ‘필터링’ 문제였다. “선정적·부정적
인 내용은 필터링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총선 때 정치색을 띠는 제보글이 많이 올라와 불쾌했다”,
“익명이다 보니까 욕설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조치를 취했으면 한다” 등의 의견이었다. 익
명의 한 학우는 “개인글로 올려야 할 민감한 사항들(정치
나 사회적 이슈)을 본인의 생각만 맞다는 흑백논리 식의
논리전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며 “학생들이 제보를
할 때에는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제보를 해야
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현재 항대숲을 관리
하고 있는 대숲지기는 “되도록이면 많은 학우들이 제보를
보았을 때, 그 제보에 관해 이질감이 없도록 느끼게 하는
것이 관리진의 주요한 목표”라고 답했다. 따라서 “선정적,
욕설 관련 글이나 익명 댓글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필터링
하고 있으며, 또한 허위사실에 대한 의심이 보일만한 글에
대해서도 장시간 관리진이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며 제보
로 올릴 것인지, 올리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고 있다”고 밝
혔다.
끝으로, 대숲지기는 “대나무 숲을 만들어 가는 것은 바로
‘학우 여러분’이라는 점을 인지해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
다. 특히 허위사실 유포 같은 경우는, 대나무 숲 관리자가 전
지적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그 사실 여부를 파악하는데 한
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은 지성인인 만큼 제보 시에 신
중함을 유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서 “대숲의
관리진도 대나무 숲을 이용하는 약 4500명 학생들 모두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의 의견을 토대로 더 좋
은 대나무 숲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yeseule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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