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거닐다보면 어렵지 않게 전단지를 건네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건네는 전단지는 다 받는다. 어딘가 가는 길에 핸드폰이 아닌, 챙겨 나온 책이 아닌 다른 사람이 건넨 무언가를 보는 것이 어떤 날은 재미있을 때도 있다. 오늘도 외출을 마치고 귀가를 해서 옷을 정리하니 주머니에서 전단지가 3장이나 나왔다. 새로 문을 연 음식점에 관한 것 2장, 헬스장에 관한 것 1장. 대부분의 경우는 보고나서 바로 근처의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주변에 쓰레기통을 찾지 못한 날은 가방에 넣어놨다가 오늘처럼 집까지 가져와서 버린다. 받은 전단지를 한 번 읽어보는 재미까지 생기게 된 나는 급기야 내 앞에 가는 사람에게는 주고 나에게는 안 주는 상황이 벌어지면 아깝기까지 하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하지만 불과 4년 전까지는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는 일절 받지 않았었다. 군대 선임과 같이 휴가를 나와서 얘기를 나누며 걷다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한 알바생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바생은 우리에게 2장의 전단지를 건넸다.

하지만 나는 늘 그래왔듯이 받지 않았고, 그 선임은 받았다. 자연스레 남은 한 장의 전단지는 우리 바로 옆 사람에게 건네졌지만 그 사람 또한 받지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선임에게 왜 굳 이 짐만 되는 전단지를 받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선임은 이렇게 답했다. “저 사람도 빨리 일 끝내고 들어가야지.” 순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오만 가지 생각들로 내 머릿속이 가득 찼다. ‘이 사람이 착한 건가, 아니면 내가 나쁜 건가’부터 시작해, ‘그럼 전단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까지. 그 당시 내가 했던 생각들은 지금까지도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생각의 변화는 있었다. 굳이 받아줘도 되는 것을 안 받아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전단지를 받다보니 거절할 때 의 찝찝함도 없어졌을 뿐더러 오히려 그 사람들의 퇴근시간을 앞당기는 것에 일조했다는 느낌까지 들어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선임의 말 한마디를 통해 내 행동에는 변화가 생겼지만 과연 내 본심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A라는 사람은 진심으로 측은함을 느껴 도움을 준 반면에, B라는 사람은 도와주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회적 평판을 위해 도움을 줬다. 이럴 때, 우리는 의도를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B를 칭찬하지만, 그 본심을 알게 되면 비난을 하게 된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선행을 베풀었는데 후에 그것이 위선적인 행동이 었다고 판명이 나면 많은 사람들은 더 큰 충격에 빠진다.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질타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행동에 앞서 본심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위선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는 위악을 본심은 선한 것임을 이유로 하여 오히려 미화시키기까지 한다. 감정이라는 본성의 표출은 제제를 받고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 하는 현 시대에서 과연 위선을 나쁘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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