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시계를 그린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달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심취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화판에 펼쳐 놓는다. 이른바 초현실주의 회화이다. 초현실주의는 문인과 화가를 중심으로 20세기 초반에 불꽃처럼 일어나서 풍부한 암시를 던졌던 문예운동이다. 화가로는 달리를 포함하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등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의식 저편에서 꿈틀거리는 심연의 기억들을 몽상적 이미지로 재현한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 화가가 있다. 바로 오딜롱 르동이다.

오딜롱 르동(1840-1916)은 1840년 포도주의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르동은 태어난지 이틀 만에 보르도의 북서쪽 메독 지방의 페일르버드에 있는 외삼촌의 농장에 보내진다. 그는 그곳에서 11세까지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다. 페일르버드는 르동의 예술가적 삶의 밑바탕이 된다. 르동은 “나는 내 예술의 근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있으면 그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고독한 유배지이며, 수도원이나 다름이 없었던 페 일르버드 대지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막막하고 황폐했던지…….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그곳에서 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당시 페일르버드가 르동이 말하는 것처럼 황량한 땅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르동의 「벌거숭이 광야」, 「메 독의 작은 숲」, 「메독. 초원의 나무들」 같은 풍경화를 보면, 그곳은 분명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들에는 지극한 고독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내면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거기에 넓게 펼쳐진 하늘이다. 아마도 그는 넓게 펼쳐진 하늘에 자신의 상상세계를 마음껏 펼쳤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저 구름을 봐라. 구 름이 여러 가지로 변하는 것을 나처럼 분간할 수 있니?”라고 말하면서, 하늘에서 기묘한 괴물이나 불가사의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들을 가리켰다고 한다. 르동의 상상력의 뿌 리에는 페일르버드와 그 대지 위에 펼쳐진 하늘 그리고 구 름이 있었고, 또한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르동은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눈, 전설이나 신화의 영웅과 괴물들, 식물과 동물의 중간계 생물들 등 지극히 새롭고 낯선 그림들을 창조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아폴론의 마차」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그의 석판화, 그 중에서도 초기의 석판화이다. 1879년에 출판한 첫 석판화집 「꿈속에서」와 188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석판화집 「에드거 앨런 포에게」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두 편의 석판화집에는 그의 초기 작품세계의 특징이 잘 드러 나는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상 당히 많다. 그 대표작이 「에드거 포우에게; 무한대로 여행 하는 이상한 풍선과 같은 눈」(1882)이다.

에드거 포우에게; 무한대로 여행 하는 이상한 풍선과 같은 눈(1882)

대지인지 바다(아마도 바다인 듯)인지 명확하지 않은 지상 위에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하늘 한가운데 애드벌룬이 떠 있다. 풍선은 커다란 눈 모양을 하고 있다. 정신 분석학적 의미에서 그것은 아버지의 눈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르동의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구름의 변화를 이야기하였고, 그것은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하늘은, 아니면 그 하늘 뒤에는 아버지 혹는 아버지의 눈이 있고, 그것은 위의 그림과 같은 형상으로 드러난 것으 로 보인다. 거기에는 좋은/나쁜 아버지의 양가적(兩價的) 의미가 공존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 눈은 세계에 대한 조망/감시, 개인에 대한 보호/명령 등의 양가적 의미를 지닌 편재(遍在)하는 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르동은 다시 1890년 유화 「감은 눈」을 그린다. 이 그림은 나중에 「감은 눈」(1899), 「성심의 그리스도」(1896), 「이브」(1904), 「부타」(1905), 「월계관」(1910) 등으로 변주된다. 「감은 눈」(1890)에서도 이미 예수의 이미지가 선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서 성자의 모습은 더 구체화된다. 르동은 「감은 눈」이라는 제명 아래 여러 작품을 창작하는데, 1890년에 그린 「감은 눈」과 1899년에 발표된 「감은 눈」은 후광이 추가된 점을 제외하면 매우 흡사 하다. 이는 하늘에 떠 있는 눈 그림들과 겉보기에 대조적이지만,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성화된 예수의 이미지와 결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뒤에는 편재하며 감시하고 명령하는 눈을 감기고 싶은 또 다른 충동이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감은 눈(1890)

오딜롱 르동은 아틀리에를 박차고 나와 자연광 아래 화판을 놓고 작업하였던 마네, 모네 이후의 인상파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던 화단에서 전혀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 하였다. 그는 일종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당대의 화가들이 외부 세계로 나아갈 때, 그는 더 깊은 인간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는 “예술은 의지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무의식’에 순순히 복종 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그를 초현 실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무관하게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시각적 탐구를 한 셈이다. 르동에 비하면 달리나 마그리트는 너무 ‘의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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