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을 예정인 사형수가 독자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한다. 그는 검정색 고양이를 기른다. 그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애완동물이며, 놀이동무다. 폭음(暴飮)으로 그의 성격은 변화한다. 그는 변덕이 심하고 화를 잘 내며, 급기야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는 증오심에 휩싸여, 고양이의 한쪽 눈을 도려내 버리고, 고양이를 밧줄에 목매어 죽여버린다. 그날 집은 화재로 불타버리고 지하실 벽에는 고양이 모양의 기이한 화인(火印)이 선명하게 남는다. 그는 길에 서 또 다른 검정색 고양이를 주어다가 플루토라고 이름 짓고 기른다. 녀석은 마치 이전의 플루토가 환생한 듯도 하다. 다시 난폭해진 그는 도끼로 아내의 머리를 쳐 죽이고, 아내의 시신을 지하실 벽에 세워둔 채 또 다른 벽을 세워 은폐한다. 두 번째 플루토는 온데간데없다. 경찰들이 들이닥쳐 벽을 허물자, 플루토가 아내의 시체 머리 위에서 기괴한 울음을 울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소설 「검은 고양이」의 내용이다. 포의 문학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 쯤 읽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포를 꽤 알려진 구시대의 공포소설가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을 쓴 추리소설의 창시자이며, 환상소설의 개척자이기도 하고, 단편소설의 현대적 기법의 완성자이다. 그는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대단히 큰 영감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보들레르는 파리 신문에 번역된 「검은 고양이」를 읽고 포의 작품을 다시 직접 번역 소개하여 포를 프랑스의 저명한 외국 작가군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보들레르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포의 글 속에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지난 수세기 동안 가장 독창적인 문학가로 평가받는다.

에드거 앨런 포의 눈빛은 20세기의 우울을 예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괴기와 기괴, 환상과 몽상, 공포, 상처, 우울 등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신경증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단지 공포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창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불가해한 무의식적 충동을 지독스럽게도 깊이 천착(穿鑿)했다. 포는 그의 소설 「엘레오노라」의 서두에서 “몽상가들은 으스름한 직감으로 영원성을 엿보고 전율을 느끼며, 깨어나면 자신이 위대한 비밀의 입구에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방향타도 나침반도 없이 그들은 ‘신성한 빛’의 광활한 바다를 헤치고 나가며 용감한 모험가들처럼 탐험한다”고 썼다. 여기서 ‘위대한 비밀의 입구’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서는 경험의 시작을 의미하며, ‘신성한 빛의 광활한 바다’란 무의식의 세계를, ‘용감한 모험가’는 예술가, 즉 에드거 앨런 포 자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 내면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 오이디푸스적 모험을 감행한 작가이다.

「검은 고양이」만 해도 그렇다. 이 소설을 꼼꼼히 읽어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 고양이를 죽인 이유는 단지 그의 폭음 때문이 아니다. 그가 고양이를 죽인 이유는 고양이가 “나를 피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고양이가 자신을 피할 때 고양이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깊은 배반감으로 변했고, 그것은 그 고양이의 눈을 후벼 파고 그 놈을 목매달아 죽일 만큼 극도의 증오심으로 변한 것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다. 아내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 그녀를 살해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경찰들이 벽 뒤에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경찰이 증거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려 하자, 주인공은 허세를 피우고 싶은 마음을 못 견뎌 막대기로 아내의 시체가 서 있는 벽을 힘차게 두드린다. 그 순간 벽 속에서 기괴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그의 승리감 뒤에는 비밀이 밝혀지는데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비밀을 누설하고 싶은 충동이 교묘하게 교차되고 있다. 인간 내면의 기이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무의식적 몽상을 작품에 담았던 포가, 시는 지극히 치밀한 계산에 의해 창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다소 의아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시란 ‘우연이나 직관’이 아니라 ‘수학적 정확성과 엄밀한 귀결’에 의해 창작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강렬한 독창성」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대표시 <갈가마귀(The Raven)>의 창작과정을 상세히 밝힘으로써 시인이 어떻게 시를 탄생시키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에 의하면 시는 모호한 감흥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시가 모호한 이유는 시의 음악적인 요소 때문이다. 음악이 즐거움을 주는 생각과 결합되면 시가 되고, 생각이 없으면 단지 음악일 뿐이며, 음악이 없는 생각은 그 명료함 때문에 산문이 된다고 한다. 시란 그 목적이 진리가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학문적인 글과 대조되며, 분명한 즐거움 대신 모호한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소설과 다르다고 한다. 알고 보면 그의 기이한 소설도 치밀한 계산 위에서 성립되었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현대 소설가이면서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이며 현대시 이론가이기도 하다.

죽기 직전인 1849년 6월 촬영한 다게레오타이프(사진의 초기 형태)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에 태어나서 1849년에 별세했다. 그는 약 40년을 세상에 머물렀다. 그는 평생 주벽에 빠져 살았고, 도박에도 손을 댔다. 아편에 중독되기도 하였고, 정신 발작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아마도 유년기의 정신적 상처가 그를 정신적 고통으로 휘몰아 갔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작품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는 세 살에 고아가 되어 숙부 밑에서 자랐으나, 숙부와는 늘 관계가 나빴다. 프로이트의 동료이자 제자였던 오토 랑크는 포의 소설과 시가 기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자기 경험에 대한 과장된 표현이거나 환상과 몽상의 경험이라고 한다. 이중자아를 다룬 포의 후기작 「윌리암 윌슨」은 도박과 음주로 망가진 한 남자의 또 다른 선한 자아가 자신을 구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열어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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