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문화기행-1

  방학 중에 비단길을 여행했다. 시안에서 란저주, 가욕관, 둔황, 투루판, 우루무치, 쿠처, 카슈가르를 거쳐 타슈쿠르간에 이르렀다. 타슈쿠르간은 해발 3500미터 파미르고원 한 복판에 자리한 파키스탄 접경의 중국 마을이다. 실크로드라고 더 많이 부르는 비단길은 통상 시안에서 시작해 로마에 이르는 중세 무역로지만, 백제나 신라 심지어는 일본에까지 이르는 장대한 길이니 내가 지나간 길은 실제 비단길의 허리정도를 더듬었다고 하겠다. 당(唐) 현장(玄奘)이 불경을 얻으려 지나갔고, 신라의 혜초(慧超)가 깨달음을 위해 가서 돌아오지 못한 길이기도 하다.
 

  통상 시안은 이쪽에서 볼 때 비단길의 시작점이다. 시안은 무엇보다 저 유명한 진시황릉이 있는 곳이다. 1974년 한 농부가 가뭄 때문에 우물을 파다가 병마용(兵馬俑)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 유적은 세상에 몸을 드러내게 된다. 39년 동안 70만 명을 동원해 건축한 이 유적의 전체
규모는 50㎢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시황릉 자체에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으며, 유적 전체를 발굴하려면 앞으로도 백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들은, 시안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켜, 시안은 곧시황릉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시안에 도착해 병마용갱을 보고서 나는 실망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내가 아는 것에 비해 지극히 적었다.
 

 시안에서 나는 더 큰 것을 발견했다. 시안은 주(周)에서 당(唐)에 이르기까지 무려 1300년 간 중원의 수도였던 터다. 오랜 시간동안 수도였던 만큼 문화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버스를 타고 혹은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다니면서, 시안에는 당(唐)의 문화, 특히 중국 시(詩)의 전성기였던 당시(唐詩)에 대한 자부심이 곳곳에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 안내판에도 가로등에도 이백, 두보는 물론 한유, 유종원 등의 시가 운치 있는 필체로 쓰여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시안이 과연 이백과 두보 중 누구를 더 윗길로 여길까 하는 것이었다. 이백과 두보 중에서 누가 더 위대한 시인인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통칭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하고 두보를 시성(詩聖)이라 한다. 이백이 시대를 초월해 예술을 구가(謳歌)했다면 두보는 시대의 아픔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인이다. 우리나라에선 대체로 두보를 위에 두는 듯하다. 성종 당시에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두보의 시 전편(全篇)을 한글로 번역하여『 두시언해』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안은 이백을 더 위에 두는 듯하다. 시안 곳곳에는 당 시인들의 조각들을 펼쳐두고 그들의 시를 새겨 두었는데, 어디에나 이백은 드높은 기상으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두보는 그 아래에서 세사를 한탄하고 있다.

  나 역시 기질 탓인지 이백에 조금 더 기운다. “무릇 천지란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나그네로구나”라고 시작하는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나 “금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나/ 타고난 재능은 언젠가 쓰일지니/ 양 삶고 소 저며 또 한번 즐기세/ 모름지기 한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지”라고 하는 「장진주」의 그 무모하리 만치 높은 이백의 기상을 사랑한다. 그는 오강에서 노닐다가 강에 뜬 달을 잡으려다 강에 빠져죽었다고 한다. 물론 전설일 것이다. 시안은 이러한 이백의 기상을높이 산 듯하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두보라고 해서 도덕군자연하는 고리타분한 시를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보는 두 수로 된 「곡강(曲江)」이라는 시를 쓴 바 있다.첫 수는 다음과 같다. 이 시의 매력은 우선 첫 두 구절에 담겨 있다. 꽃잎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봄빛이 그만큼 줄어들고, 만 잎이 떨어지면 그만큼의 봄이 간다. 꽃잎 하나 하나에서 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줌으로써 한정된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니 술에 기대어 사는 것 이외에 또 다른 무엇을 할 것인가? 시적 화자는 물가에 집을 짓고 있는 비취(翡翠,물총새)와 동산에 누워있는 기린을 생각하면서 자연에 묻혀 살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서 뜬 이름을 좇지 않고 안분지족
(安分知足)하며 사는 지혜를 깨우친다. ‘이치’란 아등바등하지 않고 자연에서 사는 것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곡강지(曲江池)에 세워진 시인 상

  곡강은 시안을 관통하는 강이다. 곡강은 그리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여행 서적에는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곳에는 당대(唐代) 시인들의 모습을 담는 조형물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겸해서 그들의 시도 새겨 두었다. 곡강은 당대(唐代)뿐 아니라 시안을 거쳐 간 무수한 중국
시인들이 시혼을 불태운 곳이기도 하다. 병마용갱을 다녀온 후 나는 두보의 「곡강(曲江)」을 읊조리며 곡강 가를 거닐었다. 두보는 이백보다 열한 살 아래다. 이백과 두보는 744년 딱 한번 바로 여기 시안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만나서 술을 마시고 시를 나누고 함께 어우러져 자면서 평생지기가 되었다. 중국의 문학자 문일다(聞一多)는 이를 두고 “해와 달이 맞닥뜨린 기서(奇瑞)”라고 하였다. 누가 위이고 아래인가? 부질없는 잣대 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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