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가수 조동진이 저 언덕을 넘어갔다. 향년(享年) 70세. 언제부터인지 그의 이름 앞에는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 ‘겨울비’,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어떤 날’ 등의 노래들은,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숨결이었다. 조동진은 가수로서도 그러하지만, 프로듀서로서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수많은 실력파 가수들을 발굴하여 키웠고 선배가수로서 후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록그룹 ‘들국화’, 하덕규와 함춘호가 결성한 듀오 ‘시인과 촌장’, 조동익과 이병우가 함께한 ‘어떤날’ 그리고 한동준, 장필순, 김광석 등이 그에게 자양분을 받고 자라나 큰 나무로 성장했다. 그래서 조동진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들을 ‘조동진 사단’이라고 부르며, 그를 일러 ‘포크계의 대부’라 칭한다. 이렇게 조동진이라는 이름 앞에 여러 수식어가 붙지만, 역시 그 앞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음유시인’이라는 말이다.

조동진은 1967년 미8군 무대에서 록 그룹 ‘쉐그린’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1979년 ‘행복한 사람’이 실려 있는 1집 앨범 『조동진1』을 발표하고, 연이어 1980년 ‘나뭇잎 사이로’가 실려 있는 2집 앨범 『조동진2』을 낸다. 이 두 앨범으로도 조동진이라는 이름은 우리 문화사에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가고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의 공기는 살벌해져 갔다. 이 두 앨범은 봄바람처럼 잔잔하게 세상에 퍼지며 많은 이의 스산한 마음을 다독였다. 그가 시대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우리에게 위안을 주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조동진의 음악을 접했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조동진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은 곡을 한 곡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그의 3집 앨범에 실린 ‘제비꽃’을 꼽는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땐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 조동진의 6집 유고 앨범. '나무가 되어'

이 곡은 한 편의 시와 같다. 이것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다. 1연에는 천진난만하게 꿈꾸는 소녀가 등장한다. 머리에 꽂은 제비꽃은 아직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는 순수한 어린 소녀의 마음을 의미한다. 그는 현실보다는 ‘새처럼 하늘을 날으는’ 낭만적 꿈속에서 산다. 하지만 2연에서 이 소녀는 제법 세상사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으로 자란다. 그래서 그녀는 많이 야위었고,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오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소녀다. 3연에서 이 소녀는 인생의 어려움을 겪고 조금은 현실을 알게 되었다. 더러는 마음의 상처도 입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꿈속에서만 사는 어린 소녀도 아니고 불안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춘기 소녀도 아니다. 그녀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멀리 창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녀는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을 정도로 삶을 성찰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녀의 성장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애틋하며 그윽하고 연민어린 눈길이다.

조동진은 나무 같은 가수였다. 그의 음악은 정적(靜的)이다. 그는 큰 인기를 누리며 떠들썩하고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갑자기 사라지기보다는, 듣는 이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그 마음에 깊이 침잠하여 잔잔하게 울림을 주는 가수였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1집)서 낮은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은근한 향기를 바람결처럼 흘려보냈다. 그는 평생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았다. 오직 음반과 콘서트로만 세상과 만났다. 방광암 말기인데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콘서트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의 유작 앨범의 제목은 『나무가 되어』(6집)다. 그는 이미 ‘나뭇잎 사이로’(2집)나 ‘나무를 보라’(3집)에서 나무를 노래하며, 나무의 싱그러움과 나무가 지닌 미덕을 노래한 바 있다. 그는 이 마지막 작품에서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은 심정을 읊조렸다. 그는 죽음을 예감하듯, “나무가 되어/ 나무가 되어/ 끝이 없는 그리움도/ 흙 속으로/ 나는 이제 따라갈 수 없으니/ 그대 홀로 떠나 갈 수 있기를/ 나는 비에 젖은 나무가 되어/ 예전처럼 외로움조차 없어” 하고 노래하고 있다.

조동진을 밥 딜런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 조동진은 밥 딜런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가수들을 외국 유명가수에 빗대는 일이 불경스런 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조동진과 나란히 두고 음미해 볼만한 가수가 있다면, 그는 캐나다의 가수 레너드 코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용히 읊조리는 창법, 시적인 노랫말, 구도자적인 자세가 모두 흡사하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 코헨은 작년 11월 82세를 일기(一期)로 저 세상으로 갔다. 지금 코헨이 갔을 때보다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조동진은 단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 가수가 아니다. 그때 그랬듯이 지금도 우리사회의 저변에는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음미하며 위안 받고 있으리라. 나도, 청소년기 홀로 있을 때면, 기타를 뜯으며 ‘나뭇잎 사이로’, ‘행복한 사람’을 무척이도 많이 불렀다. 이 글로써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분향(焚香)하노라.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