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방학 기간 동안의 나의 생활은 큰 변화가 없었다. 스무 번도 넘게 맞이한 방학이지만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매일 학교에서 강제로 자습을 한 것과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만 있었다. 그래서 방학이 끝날 때마다 ‘그렇게 기다렸던 방학 동안에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보니 지루하고 후회만 남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방학을 기다리지 말자. 쉬지 않고 열심히 살자’ 라고 다짐해 왔다. 하지만 방학이 시작되고 나면 언제 다짐했냐는 듯 또다시 본래의생활을 반복해 왔다. 지금까지는 방학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하는 나를 자학하기만 했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서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약속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혼자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2주 동안 아무것도 안 했으니 번 호에 맡게 된 칼럼의 주제로 쓸만한 것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칼럼의 주제를 ‘방학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의미’로 정하고, 과연 의미가 존재하기는 할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한 결과 부정적인 의미가 훨씬 많은 것 같다.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면 몇 달 간의 방학은 없을 것이기에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갈수록 짧아질 것이다. 나 혼자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긴 시간이라는 특권을 부여받고도 자기계발이나 미래에 올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 하지 않는 것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대외활동 등에 지원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거나,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거나, 여행을 열심히 다니기라도 한다면 후회가 없을 텐데 가만히 앉아 있는시간이 늘어날수록 앞서 말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의미 역시 분명히 있다. 몸과 마음이 바빴을 때는 겉으로는 가족, 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가끔씩은 가족, 친구들, 학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동안은 종종 피하고 싶었던 존재들에 대해 감사하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또한 여유가 없었을 때에는 오로지 나만 생각해서 내가 가장 힘들고 바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돌이켜보니 나보다 더 힘든 부모님, 친구들이 나를 위해 맞춰줬던 부분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나의 인생에서 가족이, 친구들이, 학교가, 미래에는 직장이 없다면 나는 평생 중 대부분을 집에서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다. 평소에는 꿈꿔왔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일주일만 지나도 지루하고 괴롭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니, 그 지루한 시간 속에서 나를 꺼내주는가족, 친구들, 학교, 직장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보내면 위험하다. 그렇지만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을 가지는 것은 인생에서 주기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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