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가 된 ‘도고온천’을 찾아서 -

한 소녀 일가족이 시골마을로 이사를 간다. 소녀의 어머니에 의하면 그곳은 ‘촌구석’이다. 그들은 이사 가기로한 집을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긴 터널과 마주친다.

터널 앞을 가로 막고 서 있는 신상(神像)은, 그 터널을 지나가면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기(豫期)하는 듯하다.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 아무 거리낌 없이 그 터널로 들어간다. 소녀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터널에 들어가기를 꺼려하지만 결국 혼자 남기 두려워 부모를 따라간다. 소녀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환상 여행을 경험한다. 소녀의 이름이 바로 치히로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줄거리다. 이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시코쿠의 도고온천에서 탄생했다.

얼마 전 시코쿠(四国)에 다녀왔다. 시코쿠는 일본을 구성하고 있는 커다란 네 개의 섬 중 하나이다. 시코쿠의 넓이는 제주도의 열배쯤 된다고 하니 본섬치고는 작지만 꼭 작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섬이다. 높고 험준한 산맥과 그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이 아름답다. 시코쿠는 시골이다. 한마디로 치히로의 어머니가 말하듯이 일본의 ‘촌구석’이다.

시코쿠는 ‘촌구석’이면서도 나름대로 오래된 자기 고장의 깊은 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일본인은 지독하리만치 변화를 싫어한다. 그것은 때로 일본을 건전한 발전으로 이끄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오래된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특히 시코쿠는 옛것을 간직하고 있어 많은 이에게 향수를 자아내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을 찾는 이에게 상상력을 자극하여 환상적인 꿈의 세계로 인도한다.

시코쿠에서도 가장 환상적인 곳은 도고온천이다. 시코쿠의 마쓰야마 시에 있는 도고온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다. 온천이 처음 발견된 것은 300년 전이라고 하는데, 믿기 어렵다. 이 온천에는 백로가 찾아낸 온천이라는 전설이 서려있다. 그래서 온천의 곳곳에는 백로 문양의 그림과 조각이 숨어 있으며, 네 개의 탕 중 하나는 아예 백로를 주제로 만들었다. 현재의 건물은 1894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온천의 매력은 건물 외양의 아름다움에 있다. 정면에서 보면 네 개의 지붕이 서로 다른 높이와 모양으로 서서 손님의 혼을 빨아들이는 듯하며, 측면에서 보면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기와지붕이 마치 동양의 고성과 같이 멋지다. 어찌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보다 더 신비롭게 보이기도 한다. 밤에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건물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온천욕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이 온천에 대해서 혹평을 하기 일쑤다. 대부분 젊은 관광객들은 온천 앞에서 사진만 찍고, 치히로가된 기분으로 발길을 돌린다. 탕이 완전히 구식이어서, 그리 다양한 온천욕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 온천이 갖추고 있는 노천탕도 물론 없다. 하지만 내게는 이온천에서의 온천욕은 더없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선 탕의 조각상이 특이했다. 남탕에는 동탕과 서탕으로 분리된 두 개의 탕이 있는데, 동탕에는 여신상이 서탕에는 백로의 조각 부조가 투박하지만 그윽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여신상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유바바를 연상케 한다.

물도 좋다. 온천의 물이 뿜어져 나올 때 생기는 파장모양을 온천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온천을 하다가 쉬려고 홀로 나왔는데, 홀의 한쪽 끝에 문이 열려 있어 그쪽으로 가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단이 있었다. 올라가도 좋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올라가 보았다.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계단 끝까지 올라가니 일본인 남성들과 여성들이 유카타를 입고 고즈넉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그런 무에 아무런 경계 표시도 주시 않는 모양이다. 아무도 나를 보지는 않았다. 그리로 올라가면 나도 마치 치히로처럼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두려워서라기보다 벌거벗었기에 그리로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곳은 돈을 더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3층, 4층에 갈 수 있는 표를 사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곳이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어서 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위로 삼았다.

도고온천 앞에는 현대식 상가가 늘어서 있다. 대개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와 일본 시코쿠의 전통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다. 건물은 현대식이지만 자세히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서두에 나오는 즐비한 음식점을 닮았다. 거기서 치히로의 부모는 음식을 욕심껏 먹다가 돼지가 된다. 일본인들에게 도고 온천은 그냥 온천욕을 즐기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옛것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잠시나마 꿈을 세계로 인도하는 곳이다. 도고온천은 지금도 꿈꾸기를 갈망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