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이란 ‘부유한 사회가 소비보다 저축을 더 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도리어 빈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개념만 봐서는 한낱 대학생에 불과한 나로서는 선뜻 와닿지 않는다. 거대한 경제 주체도 아닐뿐더러 활발한 소비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저축을 따로 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 이러한 경제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음식점에 가면 수많은 메뉴 중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쇼핑을 하러 가서도 수많은 제품군에 둘러싸여 무엇을 살지, 단순히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해결하려 편의점에 가게 되어서도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하는 것,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들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우리가 있다. ‘풍요로운’선택지들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떠한 만족스러운 선택지도 고르지 못하는 ‘빈곤함’을 겪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이른바 ‘선택장애’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매력적인 선택지들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작성자 또한 준비된 몇 가지의 주제 중에서 어떤 것을 선정하여 칼럼을 쓸지 고민하다가 결국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선택장애’를 주제로 선정하였다. 결국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지들로 인해 장애 아닌 장애를, 빈곤 아닌 빈곤 겪게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을 해야할 때에는 그 문제가 더 커진다. 나서기를 꺼려하고, 실패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유독 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나서서 무언가를 결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서 무언가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갖은 질타를 면치 못하게 된다. 결국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선택장애’를 불식시키지 못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증폭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서 발생된 것처럼 보이는 문제의 원인에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한 몫 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다’ 대신 ‘~일 것 같다’를, ‘좋다’ 대신 ‘좋은 것 같다’를 많이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또한 확신을 하지 못 한다기 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안 좋게 나올 것을 두려워하여 일종의 ‘회피로’를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말투는 ‘선택장애’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선택장애’를 만든 사회적 분위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선택장애’는 사회적인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둔갑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혼자 고민을 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단순한 고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장애’로까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소신껏 행동해라’라는 해결책은 뜬구름 잡는 해결책 말고, 실질적인 해결책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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