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말하는 대학

전통시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소학을 익힌 어른들이 익혀 행할 학문이 대학(大學)이다. 대학의 기본 강령은 밝은 덕을 밝혀 사람들을 교화시켜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사물의 이치를 치밀하게 연구해서 세계의 본질에 대해 올바른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먼저 자신을 세계의 본질에일치시키고 스스로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변부터 세계 모두에 이르기까지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고전이 전하는 대학의 목표이다.

역사 속의 대학, 대학생

역사 속의 실제 대학은 어떠했을까? 고구려에는 태학이, 신라에는 국학이, 발해에는 주자감이 있었다. 전통 체질을 극복하고 강력한 고대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골품제의 벽은 넘어서기 어려웠다. 유학 뒤 세계적인 대학자가 된 최치원도 그 벽은 넘어서지 못했다. 좌절한 이들 일부는 후백제로 고려로 떠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갔다. 고려는 국자감을 세웠다. 그런데 10여 개의 주요 사립학교에서 과거합격자를 주로 배출하고 그들은 혼맥까지 연결된 사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국가는 국자감 강좌 확충, 장학금 지급 등을 통해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사적인 네트워크에 바탕한 문벌은 사회를 주도하였으나 무신들로부터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지 못하고 북방의 침입으로부터 고려를 구하지도 못하였다. 몽골 치하의 혹독한 현실에 대가를 치르고 여기에 타협하는 군상들이무수했다.

그러나 극복의 동력도 대학 성균관에서 시작되었다. 고려 말 성균관은 새 시대를 여는 이들의 근거지였다. 조선에서 성균관은 교육과 학문, 이념의 상징이었다. 유학 이념의 상징 공자를 대성전에 모시고 조선 학문의 정통성을 이은 이들을 공자의 정통후계자로 지정해 함께 모셔 조선의 이념 기준을 삼았다. 성균관 학생들은 조선의 희망이었고 그들의 여론은 공론으로 간주되며 존중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인 갈등 속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흔들렸고 조선 후기 새로운 변화도 감당하지도 못했다.

근대 이후의 대학

거부할 수 없는 근대의 변화 속에 전통 대학은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했다. 자결하거나 숨어버리거나 아니면 전통을 폐쇄적으로 보존하는 것으로는 그 몫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많은 이들은 순응하고 타협한 뒤 전통을 팔아 자신의 안위를 지켰다. 전통 대학 성균관은 친일 인사 중심의 경학원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일제시대 민족진영은 민립대학을 설립하려 했다. 좌절되었다. 대신 일본은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였다. 그것은 조선의 일본인을 위한 학교였다. 식민지 조선인은 기껏해야 전문학교 교육을 받을 존재였다. 넘어서려면 제국주의의 함정을 감수하고 일본 유학을 해야 했다.

해방이 되었다. 미국과 소련,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라는 값비싼 희생 제사 끝에 경성제국대학은 국립서울대학교가 되었다. 전문학교들은 사립대학이 되었다. 다들 대학을 원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입시지옥과 우골탑의 기형을 낳았다. 그래도 그들이 배출한 인력들이 베트남 전쟁터에서, 열사의 중동에서 피와 땀을 흘려 산업화를 이끌었다. 산업화 뿐 아니라 유신독재에 맞서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밤새워 일한 어린 노동자의 최소 권리를 위해 분신하던 젊은 노동자의 외침에 응답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감당하였다.

21세기 변화 속의 대학, 대학생

오늘 한국의 대학과 대학생은 어디에 서있을까? 세계와 국내 정세, 산업 구조 및 사회변화가 예측하기 어렵게 급변하는 오늘 대학생들은 무엇을 배워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걸까?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 그리고 진단에 딱 맞는 처방을 찾아야한다. 그런데 세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자신을 바로세워 천하를 평안하게 이끌 수 있는 처방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까? 답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밤새워 공부하고 고민하는 학생에 뭉클한 감동이 인다. 기대와 격려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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