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부터 커피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볶은 원두커피를 사다가 갈아서 내려 마셨다. 콜롬비아 수프리모,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하와이언 코나, 예맨 모카 마타리…….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맛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생두를 직접 볶아 마시기로 결정했다. 생두를 수망핸디로스터기에 넣고, 그것을 센 불 위에서 쉬지 않고 흔들어주면 약 10분 쯤 지나서, 타다다닥하고 콩 볶는 소리가 나면서 그윽한 커피향이 세상에 퍼진다. 이른바 1차 크랙이다. 그리고 약 5분쯤 약한 불 위에서 흔들어주면 다시 콩 볶는 소리가 난다. 2차 크랙이다. 이때 불을 끄면 알맞게 볶아진 원두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직접 볶아서 식구들과 티타임을 갖고 때로는 볶은 원두를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인류가 커피를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칼디 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에티오피아에 염소를 기르는 칼디라는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칼디가 염소를 몰로 들로 나갔는데, 염소들이 붉은 커피 열매를 먹고는 흥에 겨워 춤추듯 뛰노는 것이 아닌가! 이를 지켜보던 칼디도 그 열매를 따서 먹어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칼디는 이 열매를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가져갔다. 수도승은 무관심하게 그것을 벽난로에 던져버렸다. 잠시 후 벽난로에서는 타다다닥하고 소리가 났고 수도원은 커피의 그윽한 향으로 가득 찼다. 이후 수도승들은, 커피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커피를 마시고 졸음을 쫓았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오랫동안 이슬람 세계에서만 즐기는 음료였다. 이슬람 세계는 커피 종자의 반출을 막기 위해, 커피 농장의 관광객들을 철저히 감시했고, 반드시 커피를 볶거나 끓여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고 한다. 커피가 유럽에 전파된 것은, 12-13세기 십자군 전쟁 시기라고도 하고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유럽 침입 때라고도 한다. 사정이 어찌되었든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인들은, 처음 커피를 대하고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그것을 배척했다. 하지만 그들도 그 매혹적인 맛과 향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특히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커피가 있었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음료였다. 기독교 세계에서 커피는 금기 아닌 금기였다.
이교도의 음료인 커피가 서서히 대중 속으로 침투하자, 1605년 교회 지도자들은 교황에게 커피 풍습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하기에 이른다. 당시 교황이던 클레멘트 8세는 이 청원을 받아들였다. 교황은 판결을 내리기 전에 커피를 한번 시음해 보기로 하였다. 시음 결과, 교황은 커피 맛과 향에 매료되어 교회의 지도자들의 청원과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린다. “이교도의 음료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감칠맛 나는구나! 이 매혹적인 음료를 이교도들만 마시게 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세례를 베풀어 기독교 음료로 만드는 게 어떻겠는가!” 이후 커피는 유럽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면서, 유럽 각국에는 수많은 커피숍이 문을 열어 성황을 이룬다. 1696년 네덜란드는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의 자바에서 커피 생산에 성공해 유럽의 커피 공급처가 되기도 한다. 이제 커피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음료가 되었다.
  커피는 누구보다 예술가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다. 평생 동안 종교 음악을 작곡한 바흐가 ‘커피 칸타타’라는 세속 칸타타를 작곡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칸타타는 커피를 금지하는 아버지와 커피를 애호하는 딸 사이의 갈등을 희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서 딸 리스헨은 “커피는 수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와인보다 부드럽다”고 노래한다. 베토벤은 아침마다 60개의 원두 알을 갈아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나는 아침식사에 한 번도 나의 친구를 빠뜨린 적이 없다. 나의 친구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고 하였다. 발자크는 하루에 80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12시간씩 글쓰기에 몰두하여 20여 년 동안 100여권의 소설을 써냈다. 그는 “커피가 위장에 들어가자 온몸이 반응한다. ‘아이디어’는 경기병처럼 전진하고, ‘논리’는 포병처럼 포를 쏘며, ‘비평’은 저격수처럼 사격한다. ‘비유’가 쏟아져 종이는 잉크로 뒤덮인다”고 하였다.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도 커피를 사랑했다. 그는 특히 예멘 모카 마타리라는 커피를 즐겨 마셔서 이 커피를 고흐 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1888)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커피만큼이나 매혹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실제로는 출처가 불분명한 호사가들의 흥밋거리 이야기들이다. 커피의 유래로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의 이야기가 그러하고,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는 과정 역시 그러하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렇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커피의 역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만큼 커피가 매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뭐래도 커피는 인류 최고의 음료이다. 한때 커피는 특권층의 음료였으며, 또 어떤 때는 지성의 음료이기도 했다.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바쁜 일상에 여유를 주는 고마운 음료이다. 지난 일 년 가까이 이런 저런 일에 쫓겨서 커피를 볶지 못했다. 그래서 항공대 학생회관 건물의 커피숍 그라찌에를 찾는다. ‘Grazie’는 감사하다는 이탈리아 말이다. 커피 Gra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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