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까마귀를 봤더니 까맸다. 다른 까마귀를 봤더니 역시 까맸다. 그러므로 까마귀는 까맣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학교에서 들어봤을 법한 예시이다. 이 논리는 귀납법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기도 한다. 귀납법은 정해진 대전제를 검증하는 방법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추론한다는 점에서 매우 경험적인 추론방법이다. 사람은 어떤 문제를 직면했을 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이 추론방법은 실생활에서 매우 많이 사용된다.
  우리는 단순히 논리적 추론을 할 때나 과학적 명제를 검증할 때만 귀납법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자신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귀납법을 통한 사고를 하게 된다. ‘내가 옛날엔 이랬으니까’라든가 ‘내가 해봤는데’와 같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미래를 추론해내곤 한다. 이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추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 개인의 과거는 그 사람의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인생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 과거를 근거로 한 미래에 대한 추론은, 비록 일반화 될 수 없을지라도, 개인의 사고와 태도를 형성하는데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개인이 살아오면서 혼자만이 경험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독보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와 태도는 결국 ‘현재의 나’를 규정하게 되고, 이는 미래로 이어져 ‘나의 미래’ 또한 규정하게 된다.
  개인의 경험을 통한 미래에 대한 추론을 일반화된 명제를 설정해놓고 그에 따른 사례들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오히려 귀납적 사고를 통한 추론이 더욱 합리적이고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는 동시에 귀납법의 오류 또한 고려해야만 한다. 귀납적 추론은 설령 지금까지의 경험이 모두 참이라고 하더라도, 이후 이에 반하는 예시가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그동안 내려졌던 결론은 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귀납적 추론을 할 때에는 항상 지금까지 내려진 결론이 한순간의 예외를 통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점을 간과한 채 단순히 경험을 근거로 미래를 추론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실패했던 것들, 실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족했던 자신, 부끄러웠던 순간들. 이런 과거의 순간들에 발목 잡혀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경험해보지도 않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 결론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예외가 하나라도 생긴다면 추론된 미래는 한순간에 부서져 버림에도 말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사회를 조종하는 빅 브라더는 이런 말을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물론 이 말은 독재 권력의 존엄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면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말 그대로 받아들여 생각해보자.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와 미래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아직까지 과거에 살아 비관적 미래를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고리를 끊고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아보자. 더 이상 과거로 미래를 결정하지 말고 현재로 미래를 바라보자. 그동안 자신이 과거로만 이어졌던 귀납적 삶에 살고 있었다면 이제 현재로 이어지는 새로운 귀납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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