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수입 가정용 세탁기의 세이프가드 조치를 결정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면서, 15일 뒤인 2월 7일부터 미국 정부는 세탁기 수입 물량에 따라 최대 50%의 관세를 추가로 부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미국에서 연간 300만대, 금액으로 10억 달러(약 1조 702억 원 추산)의 판매를 기록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세이프가드란?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하여 국내 업체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 발동된다. 수입국은 수입 물품의 수입량 제한이나 관세율 조정 등의 방식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 이는 공정무역관행에 의한 정당한 수입을 규제하는 제도이기에, 반덤핑(어떤 국가의 제품이 정상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출되어 수입 국가의 국내 산업에 피해를 주는 불공정 무역행위를 방지하는 제도)과 같은 불공정 무역을 규제하는 제도보다도 그 발동 요건이 까다롭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세이프가드협정’을 통해 ▲심각한 피해를 방지하거나 치유하고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는 정도로만 취해져야 하며 ▲수입국은 해당 조치를 취할 경우 수출국에게 협의 기회를 제공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만일 협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수출국이 보복 조치를 취하는 것도 허용된다.

 

세이프가드 발동, 앞으로의 변화는

 이에 따라 수입 가정용 세탁기는 앞으로 3년간 조정된 관세를 적용받는다. 결정된 세이프가드 조치에 따르면 TRQ(저율관세할당, 일정 수입량은 무관세 혹은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 물량인 120만대에 대해서는 첫해 20%의 관세를 부과한다. 이후 2년차, 3년차에는 각각 18%, 16%의 관세를 부과한다. 120만대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첫해 50%, 2년차 45%, 3년차 40%의 관세가 붙는다.

 이와 같은 제재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큰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두 기업은 미국에서 연간 300만 대의 세탁기를 판매하고 있어 미국 시장의 40%를 차지한다. 여기에 관세가 적용된다면 피해액은 약 1조 원으로 점쳐진다. 이는 경영 전략의 변화로 이어진다. 양사는 이번 조치에 대응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거나 제품 가격을 높여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세이프가드 조치 결정을 앞둔 지난 1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의 세탁기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이 공장은 올해 2분기에 가동되어야 했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장 가동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LG전자도 내년 2월에 가동할 예정이었던 테네시주 공장의 가동 시기를 올해 4분기로 앞당겼다. 또, 세이프가드 대상에서 제외되는 대용량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를 확대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과 정부, 당혹감 감추지 못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공식 입장을 통해 고강도 제재에 대한 당혹감과 유감을 표했다. 삼성전자 측은 “미국 정부의 세이프가드 결정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손실을 입히는 것”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삼성전자 세탁기의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을 원하는 미국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측은 “미국 정부의 세이프가드 결정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세이프가드 발효로 인한 최종적인 피해는 소비자가 입게 되고, 지역경제와 가전 산업 관점에서도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LG 세탁기는 미국의 유통업계와 소비자들이 선택해왔기에 지금까지 성장해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LG전자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유통업계 및 소비자들에게 혁신적인 프리미엄 제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 덧붙였다.

 정부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반실장은 “정부는 미국 세이프가드 조치가 과도하고 WTO 규범 위반 소지가 명백하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명한다.”며 “특히 한국산 세탁기는 미국 산업피해의 원인이 아니라고 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정을 뒤집고 조치를 내린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해 현지 경제발전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제한이라는 불이익을 가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처사”라고 덧붙였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20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서 WTO 세이프가드 협정에 따른 양자협의를 현재 진행 중에 있다.”며 “만약 협의가 결렬되면 WTO 제소를 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가능성 없는 계획에 냉담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선 WTO에서 승소를 거뒀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이를 이행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2월 미국 정부가 한국산 가정용 대형세탁기에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했을 때 우리 정부는 WTO에 제소해 승소한 바 있다. 하지만 강제 이행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미국 정부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보상을 요구하겠다는 계획도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WTO 세이프가드협정에는 ‘절대적 수입량 증가’를 이유로 부과한 조치에 대해 상대국이 3년간 보복을 취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번 미국의 조치는 3년간 보복을 취하는 것으로 마련돼 있다. 또, 우리 정부가 보복을 할 경우 또 다른 분야로 제재를 확대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이프가드와 같은 미국의 통상 압박에 밀릴 경우 이는 곧 수출 전선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다. 기업과 민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대응책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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