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손휘권

  우리가 지내는 매일,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면 어떨까? 거창하게는 역사를 비롯해서 심지어 우리가 읽는 전공책 같은 것도 모두 기록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기록의 중요성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것 보다 크다. 기록이라는 행위가 없었다면, 우리가 태어나지도 못했을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 수많은 학자들이 남긴 연구 성과들 등 모든 것들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기록이라는 행위는 상당한 역사를 자랑한다. 기원전 이전에도 문자로 기록된 자료들이 발견되고, 원시인들마저 동굴에 그림으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하곤 했다. 어쩌면 기록하려는 것은 인류가 살아오면서 무의식중에 가지게 된 습관 중 하나로 판단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거창한 느낌이 드는 행위이다. 기록으로써 의미를 가지려면 기록의 주체나 대상이 뭔가 거창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조선왕조실록’이라든가 ‘대통령 기록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원시인들의 일상을 기록한 동굴벽화에서 알 수 있듯, 공식적인 기록 뿐 아니라 개개인의 기록 또한 의미 있는 것으로 남겨질 수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일기’다. 일기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형식, 분량도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책상 서랍만 뒤져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일기다. 일기는 ‘그 날의 기록’이라는 한자어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순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 일기의 대상이 됨은 당연하지만, ‘그 날 무슨 생각을 했는가’까지 기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내가 경험한 하루 중에 외적으로 스쳐지나간 일들만이 아닌, 내면적으로 스쳐지나간 일들도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진정한 나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물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일기는 가끔 예전을 돌아보면 그 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나만의 기록유산으로 거듭나곤 한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일기를 자주 썼다. 물론 자의보다는 타의가 더 크긴 했지만 숙제검사를 위해 방학 때까지 일기를 쓰곤 했다. 초등학생의 일기라고 해봐야 매일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 속에 쓸 것이라곤 날씨가 어땠는지, 밥은 무얼 먹었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정도밖에는 쓸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 심지어 ‘몇 줄 이상’이라는 단서가 붙기까지 했다. 글재주가 없는 초등학생으로서는 쓸 것도 없는 내용으로 분량을 채우기가 그렇게 곤욕스러울 수 없었다. 게다가 쓰기도 귀찮아서 밀렸다가 숙제 검사 직전에 몇 주치 일기를 한꺼번에 써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일기를 자주 쓰곤 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일기를 쓸 일이 없었다. 숙제도 아니고 그 귀찮은 일기를 굳이 시간 내서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아마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된 탓인지 그냥 무언가를 적고 싶었던 것 같다. 일상적인 일들을 비롯해서 평소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 친구한테도 말하기 꺼려지는 나에 대한 이야기들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쓰곤 했다.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차분하게 일기를 쓸 시간이 부족하자 매일 쓰지 못해 거의 주기(週記), 심할 때는 월기(月記) 수준까지 빈도가 줄어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가끔이나마 계속 쓰다 보니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를 뒤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탄생했다. 이런 점들이 뿌듯해지자 심지어 좋은 생각이 들어 ‘오늘은 꼭 일기장에 써야겠다.’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쓰지 못하고 나중에서 쓰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할 정도가 되었다. 이걸 깨닫고 나니 일기를 쓰는 것이 더 이상 귀찮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에게 검사를 받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닌 만큼 분량도 형식도 자유로워져 쓰기도 한결 편해졌다.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도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내 사고과정의 변화양상을 보는 맛도 쏠쏠해졌다. 물론 이렇게 자랑스럽게 써놓고도 불과 일주일 전 썼던 일기마저 다시 읽으면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는 일도 허다하다. 가끔 술에 취해 쓴 일기를 읽어보면 찢어서 불태워버리고 싶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운 기억들도 나의 역사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나름 기쁘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일기란 소중한 기록일 것이다. 일상에 치여 잊고 있던 나의 예전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소중하지 않을 리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없이 어리기만 한 것 같은 그 때 자신의 모습들이지만, 결국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기에 초라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모든 순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만약 누군가가 1초도 빼놓지 않고 모든 순간을 다 기록해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 기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기는 다른 누구에게 말 할 수 없는 나의 깊은 속마음까지 기록할 수 있다. 표면의 내가 아닌 진정한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매일이 아닐지라도 일기를 쓴다면 조금이나마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 세월이 지나가며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를 잊어갈 때 쯤, 잃었던 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일기에 기록하는 자신의 모습은 제각각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평범한 일상만을 쓸 수도 있고, 누군가는 굉장히 자만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높이는 내용만 적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낮은 자존감 때문에 자신을 한없이 내리는 내용을 쓸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 대한 욕을 수없이 적어내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나중에 봤을 때 부끄러울 내용이든 자랑스러울 내용이든, 모두 그 때의 내가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어떤 내용을 쓰든지 일기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의의가 있다. 내용보다는 자신을 기록하는 그 자체로 이미 그 가치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사회적으로 굵직한 일들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이지만, 그 사건의 주인공들조차 한 개인에 불과하다. 즉, 이 논리로 생각해 본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건들과 그를 통해 느낀 점들도 역사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기도 개개인의 역사다. 한번 떠올려보자. 오늘 내가 경험했던 사건들. 하루 종일 나를 붙잡았던 고민들도. 뿐만 아니라 나를 내리쬐던 햇빛, 나를 스쳐갔던 바람까지. 그리고 기록해보자.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까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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