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雪國)」의 고향 에치코 유자와

  지난 겨울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동북부 지방을 거쳐 북해도 끝까지 두루 둘러보았다. 북구(北歐)와 같은 눈경치로 유명한 지역이니만큼 눈을 실컷 보고 싶었다. 나는 나이 쉰이 넘었어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눈이 좋다. 명색(名色)이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눈 구경을 가는 참에 다른 근사한 구실이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싶다. 해서 겸사로 구실 삼아 눈의 마을을 대표하는 일본의 세 작가에 대한 문학적 탐색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빙점」의 미우라 아야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 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서두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을 1937년에 처음 발표하고 12년 동안 여러 번 수정하여 1948년에 완성하였다. 1968년 스웨덴의 한림원은 이 소설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택한다. 이로써 가와바타 야스나리는인도의 타고르 다음으로 아시아의 두 번째 노벨문학상수상자가 되며, 이 소설은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이 된다.
이 소설의 서두, 특히 그 첫 번째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는 세계의 문학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두루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겨울에 시베리아로부터 불어내리는 북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서쪽에 많은 눈을 쏟아놓고 동해로 물러난다. 마찬가지로 일본 본토 혼슈에도 백신산맥이 가로질러 있다. 그래서 동북부지방은 세계적인 강설지역이다. 겨우 내내 쌓인 눈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니 산맥의 남쪽 동경 지역에서는 별반 눈을 볼 수 없다가 터널을 통해 산맥을 지나면 눈을 의심할 정도의 눈 세상이 펼져질 것이 짐작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새로운 환상의 세계가 펼쳐질 듯하다「. 설국」을 읽고 에치코 유자와를 찾는 여행객들은 바로 그러한 경험을 기대한다. 옛날 기차와 달리 오늘날 신간센은 너무 빠른가? 너무 기대를 했던가? 터널을 빠져나와도 기대만큼 경이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설국은 설국이더라.
  저녁에 에치코 유자와에 도착했다. 그곳은 약간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 그곳은「 설국」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스키촌이기도 하다. 팔첩방(八疊房)에 짐을 부려놓고 에치코 유자와의 밤풍경을 감상했다. 아늑한 눈 세상……. 지붕들에는 눈이 50센티쯤 쌓여있다. 1미터쯤 쌓인 지붕도 있다. 나이테처럼 쌓이고 녹고 또 쌓인 모양이다. 그렇게 겨우 내내 눈은 겹겹이 쌓인다. 식당과 선술집은 더러는 열려 있고 더러는 닫혀 있다. 가게는 역 앞에 하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스키를 타러 온 서양 사람들이 눈에 뜨이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불쑥 고마코(설국의 인물)나 요코가 나타날 것 같기도 하다. 겨울에는 일본 사람들도 많이 찾는 인기 관광지이지만 고즈넉하고 한적하다. 밤이면 또 눈이 내린다. 내려서 쌓인다.


  다카한료간(高半旅館),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34년부터 1937년 사이에 머물면서 「설국」을 쓰고 수정한 곳이다. 에치코 유자와 외곽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창문 밖으로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다카한(高半)인가 싶다「. 설국」의 주요 무대이기도하다. 이곳에서「 설국」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문학애호가라면 한번쯤 머물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문학애호가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나도 거기에 머물고 싶었지만 예약을 할 수 없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했던 방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고, 「설국」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문체가 그렇듯이, 인간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아주 깔끔한 사람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곳에 머물 수는 없었지만 여관을 둘러보고 온천도 즐겼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모든 것은 헛수고라고 말한다. 시마무라는 젊은 시절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던가? 그래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자살했을까? 허무해서? 모든 것이 헛수고라서? 그는 1968년에 노벨문학상를 받고, 1972년 자살했다. 그는 일본의 미학을 대표한다. 그의 문체와 정서가 그렇다. 어쩌면 깔끔한 허무주의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생노병사, 그것을 구질구질하다고 여겼을까? 그는 깔끔한 삶과 깔끔한 죽음을 꿈꾸었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봤자 그것도 역시 헛수고가 아닌가? 그래도 역시 눈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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