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휘권 편집국장

  우리는 항상 정의를 갈망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 해 누군가는 총칼과 맞서며 쟁취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광장으 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美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온 나라를 휩쓸며 사 회적으로 정의에 대해 갈망하고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발현되 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봤을 때 옳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義)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정의를 그토록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 은 사람들은 ‘사회가 부조리해서’, ‘정치인들이 도덕적이지 못 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내놓곤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원인이 무엇일지에 대해 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사회가 부조리하고, 정치인들이 도덕적이지 못해서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 리진 않았지만, 그 근본에 대한 2차적 물음이 빠졌다. 이면에 담긴 원인들은 물론 여러 가지가 존재하겠지만, 가장 크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원칙의 부재’라고 말하고 싶다. 원칙 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지켜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금품을 수수하고, 누군가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을 때. 우리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지켜야 할 것’을 지 키지 않아서 벌어진 일들 아니었는가.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이라는 단어가 오용된다 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무를 볼 때 담당자가 “원칙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다음 말로 무엇을 기대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말은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해 주겠다.”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주는 것을 ‘유도리 있다.’라 는 명목 하에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원칙을 고수 하는 사람은 융통성 없는 고루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심지어 대나무와 갈대의 비유를 들이대며 깐깐하게 원칙만을 지키면 대나무처럼 부러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소위 ‘갑 질’이라는 행태를 벌이며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말 한마디로 모든 절차를 깨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원칙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 하에서도 일정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상 황에 따라, 대상 또는 상대방에 따라 바뀐다면 그건 더 이상 원 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칙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 주변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그것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 내릴 사 람이 내리고 타는 것, 수업에 지각하지 않는 것 등등. 어쩌면 원 칙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별것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이쯤 되면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우선 첫 번째는 ‘원칙을 지키면 정의가 보장될 수 있는가’이다.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원칙을 지키는 것이 반드시 정의를 보 장한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A집단은 B를 하되, C집단은 그 특성상 하지 아니한다.’라는 원칙이 세워졌다고 가정하면, 과 연 원칙을 수행한 결과가 정의로운가는 단언하기 힘들다. C집단 이 B를 할 수 없는 여건이긴 하지만, A집단은 충분히 불만을 가 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저것이 과연 원칙으로 성립이 가능한가도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 글을 쓰는 너는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느냐’라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나도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수업에 늦는 등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 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스스로 원칙을 잘 지 키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사람이 정의를 보장하지도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 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원칙이란 지키라고 존재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자체가 정의를 보장하진 않지만, 정의 를 보장하는 다른 요인들보다 비중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 다. 또한 원칙이라는 잣대는 반드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굵직한 사건에만 들이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의 일상적인 것 까지 들이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칙의 잣 대를 무조건 사회적 부조리에만 들이댈 것이 아니라, 우리 주 변,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에게도 들이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원칙의 원칙’이다. 우리가 사소한 것이라도 원칙을 지켜 나갈 때, 만약 그것이 어렵더라도 지키려고 노력해 나갈 때, 비 로소 우리 사회에 ‘원칙’이란 단어의 의미가 제대로 설 수 있을 것이고, 이런 것들이 쌓여나가 정의로운 사회의 기반으로 역할 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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