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고향 ‘가나기’ 기행

  에치코 유자와를 빠져나와 니가타와 아키타를 거쳐 오 노 본선 열차를 타고 가나기로 향했다. 가나기…….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이다. 쓰가루 지방의 몰락 귀족의 후예로 전 후 일본의 상처를 대변했던 작가다. 1940년대 초, 일본인 들은 제국주의 전쟁의 광풍(狂風) 속에서 수많은 비인간적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고개를 숙일 줄 몰랐다.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일왕(日王)의 처참한 목소 리는 그러한 일본인들의 정신을 공황 상태로 내몰았다. 이 때 다자이는 한 개인의 절망을 절망 그대로 솔직하게 토로 하는 소설을 써냈다. 정치적이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절망 을 그렸기에 더욱 많은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서 그는, 오늘날까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문학애호가를 매료시키는 작가이기도 하다.

  대학원을 다닐 무렵 도서관의 일본 소설 서가에서 한철 을 내내 보낸 적이 있다. 손창섭, 최인훈, 김승옥, 이청준 등 의 소설을 두루 읽으면서, 관심은 점차 세계 문학으로 이 어졌고, 그러다가 일본 소설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일본 에 대한 저항감이 마음 속 깊이 도사리고 있지만, 인간 본 질을 저 심연에까지 도달하여 비추고자 하는 일본 문학은 또 다른 경이의 세계였다. 한국문학이 인간과 사회와 역사 에 대한 거대담론의 성격이 짙다면, 일본 소설은 개인의 내 면적 진실에 대한 물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 문학을 연구하러 오는 일본인들은 대개 한국 문학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문학은 우열을 가 릴 것 없이 각기 제 나름의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일본 문 학에 심취한 동안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작가가 바로 다자이 오사무였다.

  다자이는 소설을 통해서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민낯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작가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마땅히 부정되어 왔던 행위들이 긍정되고, 긍정을 넘어 연 민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솔직 담백한 그의 문체는 그의 소설을 아름답게 만든다. 만년의 역작 「 인간실격」은 바로 이러한 소설을 대표한다. 이 소설의 주 인공 요조는 술과 마약 그리고 부적절한 여자 관계 속에서 파탄의 삶을 산다. 요조의 이러한 행위는, 어린 시절 어른 들의 허위에 찬 행위에 대한 발발로 형성된 ‘광대짓’의 연 장이다. 어린 요조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감행함으로써 수 치를 감수하며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그의 행위는 미워할 래야 미워할 수 없다. 욕하고 꾸짖기보다는 애정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거기에는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인간 허위에 대한 은근한 폭로가 담겨 있다. 제목처럼 요 조는 인간 합격이 아니라 실격이다. 요조는 “태어나서 죄 송합니다.” 하고 말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분신이기에 많은 독자들은 요조에게 보냈던 연민의 눈빛을 다시 작가에게 보내게 된다.

  젊은 시절 한 때, 나의 정신적 친구였던 다자이의 고향 가나기에 간다는 것은 진정으로 설레는 일이다. 작년에 그 근처 히로사키까지 갔다가 너무 멀어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가나기는 산맥이 끝나는 일본 혼슈의 북단 평야 지대에 있다. 동경에서 가려면 열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하는 깡촌이다. 가나기로 향하는 쓰가루 열차는 이용객이 적어 사라질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다 행히 이 열차는, 다자이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열차로 거듭 나, 오늘날 가나기를 찾는 여행객에게 즐거운 추억을 안겨 준다. 겨울이면 이 열차에는 석탄 난로가 피어오르는데, 거 기에 구운 오징어를 안주 삼아 가나기 사케를 마시며 차창 너머로 보이는 눈 덮인 쓰가루 평야를 완상(玩賞)할 수 있 다. 나도 차장 밖 쓰가루 평야의 눈경치를 바라보면서 구운 오징어에 가나기 사케를 마셨다. 곧 가나기에 도착하리라 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가나기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다자이가 태 어나고 자랐던 사양관(斜陽館)이다. 저물어가는 귀족 가 족의 삶을 여인의 시선으로 처리한 『사양』이라는 소설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소설에서 이름을 따 이 저택 을 사양관이라 부른다. 한때 여관으로 변신하기도 했던 사양관이 이제는 작가의 삶을 짐작케 하는 자료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 피난의 집’도 가보았다. 전쟁 당시 동경에서 피난 와서 집필을 했던 건물을 그대 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다자이의 문학비와 동 상이 있는 아이노 공원까지 가나기 거리를 구경하며 천 천히 걸었다. 곳곳에 작가를 기리는 기념물들이 즐비했 다. 넓은 호수를 끼고 있는 공원의 눈풍경이 눈부시게 아 름다웠다. 벚꽃이 피는 봄에는 이 공원에서 작가를 기리 는 축제가 열리는데, 그때 이곳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 사한다고 한다.

  가나기는 온통 다자이 오사무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이 불쌍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작가를 관광 상품 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들 역 시 이 작가에게 애틋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짙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이 작가에 대한 가나기 사람들의 순수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어떤 점에서는 쓰가루 사람 특유의 뚝심에서 연유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었다. 이들에게는 도시인들의 콘크리트 냄새보다는 몸으 로 부딪히는 인정어린 숨결이 느껴졌다. 가나기는 분명 깡 촌이다. 하지만 히로사키로 대변되는 혼슈 북방지역의 자 존심은 가나기에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시골 사람들 특유 의 자부심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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