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휘권 편집국장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시계만 봐도 오늘 지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통학만 여섯 학기 째. 전철 시간표와 상관없이 이쯤 나가면 탈 수 있는지 없는지도 가늠이 될 정도다. 하지만 눈을 뜨는 시간과 정신을 차리는 시간의 괴리는 또 다른 문제다. 왠지 일찍 일어나 여유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잠깐이라도 여유를 부리는 순간에는 지각하기 딱 좋다. 반대로 눈을 늦게 뜨는 날에는 정신이 번쩍 드는 대신에 이미 지각이 확정되고 만다. 어찌어찌 정신을 차리고 집을 나와도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경의중앙선. 경의중앙선을 타고 통학하는 것이 참 고달픈 이유가 ‘안 온다.’는 것이다. 잘 안 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안 온다. ‘이쯤이면 오겠지’하고 역에 가면 까마득하게 멀리 있고, ‘어차피 늦었겠지’싶으면 눈앞에서 떠나버린다. 특히 용산 이전에서 통학하는 학우들은 알 것이다. 전광판에 ‘급행’이 뜨는 순간 일단 지각은 마음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럴 때마다 마음은 급해지고 핸드폰으로 온갖 정보들을 찾기 시작한다. 서울역에서 오는 전철은 몇 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지, DMC에는 몇 시 정도에 도착할지, 이도 아니면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학교까지 택시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택시를 타면 지각을 면할 수 있을지 등등. 1학년 때야 지각인 것 같으면 그냥 학교를 안가고 말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곳곳에 ‘급행’이 산적해있는 오전 수업이 많아질수록 아침의 여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택시를 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같이 택시를 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학교로 가는 여러 경로를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중간지점마다 시계를 보며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기에 이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라도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옳은 말이다. 비록 늦었지만, 이것도 모르고 여유부리는 것보단 자각하고 그 때 부터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하지만 개그맨 박명수는 이런 말을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늦었다고 스스로 깨달을 정도면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남들은 저만치 앞서갔을 것이고, 어쩌면 그 때부터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어쩌라는 말인지 감도 안 온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앞서갈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젠가 적어도 한번쯤은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나는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그 때 부터라도 열심히 해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늦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늦었다’는 생각이 언제 드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개인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과 비교했을 때’일 것이다. 남과 비교했을 때 대학에 늦게 들어왔다면 ‘늦었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남들보다 군대를 늦게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이유에서든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몇 년을 휴학한다면 역시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특정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도 자신을 ‘늦었다’고 규정할 수 있겠지만, 통상 대다수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늦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남들의 무엇을 자신을 비교할 때 늦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 때 일 것이다. 대학이라는 목적지, 군대라는 목적지 등 남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 다수의 사람들보다 늦게 도착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다시 통학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지각을 면하기 위해 잠에서 제대로 깨지도 못한 채 마음만 조급하다. 하지만 학교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집을 나섰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일찍 출발한다면 마음도, 시간도 여유롭다. 그러나 어차피 늦었고 학교를 가야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전철을 끌어당길 수도 없고, 날아서 학교를 갈 수도 없다. 늦게 출발했지만,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아무리 자신을 재촉해봐야 늘어나는 건 짜증뿐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늦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늦었다고 일부러 자신을 재촉할 필요도 없고, 미리 자포자기할 필요도 없다. 가고자 하는 곳이 정해져 있다면. 늦어도 가야만 하는 곳이라면 늦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저 가면 된다. 늦더라도 도착해야만 하는 곳이라면, 늦었어도 그냥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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