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기자

  “Connec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첫 번째로 말한 내용이다. 무엇이든지 일단 시도해보면 그것이 점이 되고, 미래에는 그 하나하나의 점들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 그 점들이 어떻게 연결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단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성공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이미 그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신이 찍은 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어서 힘들었던 과거가 값진 경험으로 느껴진다던가 하는, 이미 성공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낭만, 그런 것이 아닐까?
  젊을 때 무엇이든지 시도해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는 좋은 말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지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이든지 시도해본다는 것은 곧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 실패의 리스크는 젊은 나이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쓰고 아프다. 무엇이든지 시도해보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며 성공을 가능케 한다는 기성세대들의 말은, 흔히 ‘갑질’로 여겨지는 그들의 행태와 모순된다. 이미 젊은이들은 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있다. 젊을 때 무엇이든지 시도해보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불가능한 말이 되어버렸다.
  ‘가난한 시인’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기 삶을 감당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기에, 더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것이 대중들이 불편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도 말이다. 가끔은 이러한 부조리함을 외치던 시인의 역할은 현대에 와서 누가 그 정신을 이어받았는지, 누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최근 들었던 한 강연에서 연사님이 기자로 활동하실 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예부 기자로 활동하시는 동안, 연예계의 부조리한 구조문제를 제기하는 글보다 최근 입국한 연예인의 사진 한 장을 올린 글의 조회수가 더 높았다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이미 대중들에게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글은 머리를 아프게 하는 불편한 사실로써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부조리함을 묵인하고 모른 체해야 하는가? 만약 말해야 한다면 누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하는가?
  프랑스의 명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에 대한 대답을 보여준다. 전염병이 시작되었지만 모른 체하는 사람들, 곧 일이 커지고 나서야 병든 사람들을 격리시킨다는 조치를 취한 시 당국은 소설 내에서의 사회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당하고, 어떤 지원도 끊긴 사람들에게는 절망밖에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가지고 수천 명을 휩쓴 전염병 페스트로부터 이겨내는데 성공한다.
  다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아무리 해결하고자 해도 없어지지 않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누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 아무리 해결해도 없어지지 않는 전염병같은 부조리함은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메마를대로 메말라있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외쳐야 하는 시인들은 모두 병들어있다. 혹자는 말한다. ‘이 가난하고 메마른 사회에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대답은 ‘가난하고 메마른 사회에 시인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소설 페스트의 신문기자 랑베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대로 다 보고 나니,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의사 리유는 이렇게 말한다.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가난하고 메마른 사회에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대답은, 끊임없는 이 전염병 같은, 마치 페스트같은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 시인이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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