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A에 대하여

  A는 마음이 여렸다.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의 A는 짓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A의 필통을 빼앗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가방을 숨겨놓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럴 때마다 A는 작은 목소리로 필통을 돌려 달라 했고, 혼자 학교 이곳저곳을 뒤져 먼지투성이의 가방을 찾았다. 천원만 빌리자며 가져간 돈은 점점 그 몸집을 키워 만원이 되었고, 잠깐만 입자던 옷은 어느새 친구의 옷장에 걸리기도 했다. 참을 수 없던 A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친구 사이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느냐”, “장난을 왜 장난으로 못 받냐”며 무시당했다. 결국 A는 세상의 무관심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는 엄연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A가 목숨을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가해자가 되었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 입시를 앞둔 다른 학생들은 무슨 잘못이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A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피해자 A는 가해자 A가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 – B에 대하여

  B는 대기업의 임원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직장에, 억대 연봉은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회사에서도 일처리가 완벽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원칙에서 벗어난 일은 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런 그의 태도는 윗사람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 B의 상사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누가 보아도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지적하지 못했다. 이에 목소리를 높인 건 B였다. 언론에 사실을 알리며 정의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부당한 인사발령이었다. 그를 믿고 따르던 직원들 또한 부당한 조치임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 또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뒤로 숨을 뿐이었다. B는 양심선언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후 B는 투쟁을 계속했다. 옳지 못한 일임을 알리고, 정의를 되찾으려 했다. 허나 어느 샌가 직원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흔히 말하는 ‘유도리’가 없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관심종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관심을 받아 정의의 사도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정계에 진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렇게 B는 회사와 동료에게 폐만 끼치는 가해자가 되었다.

마지막 이야기 – 우리 모두에 관하여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범죄를 저지른다.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모르기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다만 그 크기가 다를 뿐이다. 범죄가 성립되면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가해자와 피해자. 옳지 못한 일을 한 가해자는 응당한 죗값을 치르고,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위로를 받거나 보상을 받기도 한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명확하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A는 피해자이며, 그를 괴롭힌 친구들은 가해자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B는 피해자임이 명백하고, 부당한 처사를 내린 상사와 회사는 가해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먹구름 속에 갇힌 듯, 분명하기는커녕 흐릿하기만 하다. 시간이 흘러 A와 B가 가해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문제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혹자는 “사실 관계를 알고 보니 가해자가 그리 잘못한 것 같지만은 않더라,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더라.”라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가해자가 마녀 사냥의 피해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과장해서 얘기하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현실은 피해자가 용서하고, 가해자가 참회하기를 바란다.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는 순식간에 속 좁은 가해자가 되며, 참회하는 가해자는 과도한 비난의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진실과 사실 관계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더 관심 받는 현실로부터 온다.

  우리는 마지막 이야기 속 우리의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 진실과 사실이 아닌 자극적인 것에 이끌리지 말아야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를 진정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과 가해자가 응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건 결국 우리 모두의 올바른 판단뿐이니까.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