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가 시작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글쓰기」 수업에 들어가 보니, 몽골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리비아 학생도 있었다. 그 사이에 흑인 학생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아흐마트 디모’라는 학생이다. 검은 피부색이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그리고 날렵하게 잘 빠진 몸매가, 그가 정통 아프리카 흑인이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맑은 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20대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흔히 아프리카 어린이들 사진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그런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착하고 순진해 보였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않은 이 아프리카 청년이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우리 한국항공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디모의 국적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나라 ‘차드’이다. 세상을 떠도는 꿈을 꾸며 아프리카 지도를 들여다보면서도 차드라는 나라가 있는 줄 몰랐다. 차드는 아프리카 북부 중앙에 위치하여 리비아, 수단, 카메룬, 나이지리아 등에 둘러싸인 제법 큰 나라다.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35위이니 잘 사는 나라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정통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차드사람이라는 점이 더욱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이슬람교도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는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 실제로 춤을 추는 것은 아닌데도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춤을 추듯이 가볍다. 그의 행동 자체에서 아프리카 리듬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자기 고향에 대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 주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가 고향인 둘군이라는 학생의 글도 그렇지만, 몽골의 ‘깡촌’ 시골 웁스 아이막에서 온 사이한의 글은 더욱 깊은 향수(鄕愁)를 담고 있었다. 대부분 몇 년씩 고향에 갈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눈에 봐도 아랍사람인 리비아가 국적인 아미르는 자기 고향에 몇 번 가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리비아를 떠나 세 살부터 한국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단연코 자신은 리비아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었을 테지만, 그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다음 학기에는 학부 대표에 도전해보겠다고 한다.
  디모의 글은 조금 달랐다. 자신에게는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디모는 두바이에서 태어났고, 두바이에 살다가 한국에 왔다. 그는 한 번도 그의 국적인 차드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차드가 북아프리카 중앙에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차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두바이에서는 그를 차드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각국에서 온 학생들은 자기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축제가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 참석하지 않고 집에 혼자 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차드사람도 두바이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어디서나 이방인인 셈이다. “제게는 고향이 없어요. 제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하늘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에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요.” 모두들 숙연해 졌다.
  어느 날 우리는 자기가 본 한국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디모는 백종렬 감독의 「뷰티 인사이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녀노소의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등 다양한 외국인으로 매일 변하는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갑자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참 이상합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정말 많은 나라 사람들로 변하는데, 그 중에 흑인은 없어요. 왜 그럴까요?” 이야기는 자못 심각해 졌다. 그의 질문에는 이미 확실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흑인이 나오면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질 법도 한데……. 흑인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하고 대답했다.
  그는 재차 물었다. “선생님께서도 혹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좀 난감해졌다. 디모에게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아마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 조금은 있을 거야?” 하지만 ‘조금일까? 무의식속에?’ 하는 물음이 마음속 깊이 파고 들었다. 인종, 국가, 종교, 빈부, 성 등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차별에 대해서 더듬어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디모가 말했다. “이태원에 갔는데, 어떤 아이가 나를 보면서 원숭이 흉내를
내는 거예요.” 나는 괜히 한국사람으로서 부끄러워졌고, 그가 흑인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디모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괜찮아요. 다 그런 걸요 뭐.”
  우리는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넬슨 만델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간디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깊이 있는 대화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진솔하고 진지한 대화였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차별의 주체일 뿐 아니라 대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디모에게 말했다. “어쩌면 흑인이 힘이 세지면, 백인을 차별할지도 모르지.” 문득 존 레논의 ‘이매진’이 떠올랐다. “존 레논의 이매진이라는 노래를 아나?” 하는 나의 물음에 디모는 “못 들어봤어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휴대폰으로 이매진을 틀었다. 우리는 잠시 몽상가(dreamer)가 된 기분에 젖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있던 디모의 그 맑디 맑은 눈이 더욱 맑게 빛났다.

 

Imagine

John Len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living life in peac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d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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