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5시경, 서울시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생존자들은 진술을 통해 “많은 사상자가 날 정도로 큰 화재는 아니었다.”라며 “소방방재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피해가 커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해당 고시원 건물에는 화재 감지기와 비상벨은 있었으나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방화문이 설치된 피난 계단 또한 없어 대피 시 완강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여기에 사상자들 대부분이 사회적 취약계층인 일용직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취약계층의 주거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부족한 제도적 지원

 실제로 현재 정부가 ‘주거 빈곤층’을 돕기 위해 ‘주거급여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취약계층의 주거 환경 개선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거급여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맞춤형 급여로 주거 빈곤층에게 임차비용이나 수리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신청 가구의 소득과 재산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34%’ 이하인 임차가구에는 임대료 지원을, 자가가구에는 주택을 고치는 비용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임차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30% 이하라면 기준임대료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기준임대료는 1인 21만 3000원이다. 그러나 고시원의 평균 월세가 30만원임을 감안한다면 기준임대료만으로는 고시원 방 한 칸을 얻기조차 어려운 셈이다. 그나마 서울시는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1급지며, 수도권에서 떨어진 2, 3급지의 주거급여는 적어진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1인 가구 주거급여는 한국 주거 현실에서 굉장히 적은 금액인 것이 사실”이라며 “한정된 예산을 적절히 배분하는 게 어렵다.”고 한계를 드러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고시원

 전문가들은 고시원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 시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건축법 시행령 제34조에 따르면 건축물은 피난층 또는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 계단 2개를 설치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각층의 바닥면적이 200제곱미터 이상인 곳에만 적용된다. 고시원과 같이 층별 바닥 면적이 작은 곳은 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에 직통 계단을 설치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은 직통 계단을 만들지 않고 완강기만 설치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면적에 상관없이 외부로 통하는 계단을 무조건 2개로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완강기는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건물 뒤쪽이나 옆면으로 계단을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화문이 설치된 피난 계단을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건축법 시행령 제35조는 ‘지상 5층 이상, 지하 2층 이하 건물’에만 피난 계단을 설치하도록 했다.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과 같은 4층 이하의 건물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교수는 “4층 이하 건물의 계단도 피난 계단 구조로 만들어야 연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시설은 현행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직통 계단이나 방화문이 설치된 피난 계단을 갖추지 않아도 건축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화재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취약계층 지원 방안은

 이에 서울시는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 시내 고시원 총 5,840곳과 소규모 건축물 1,675곳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화재취약시설은 소방공무원이, 안전취약시설은 건축구조 분야 외부 전문가와 공무원이 합동 점검하게 된다. 겨울철에는 화재나 균열, 붕괴 등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 증가하는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를 통해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는지, 비상구나 피난 경로에 장애물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또 피난 안내도를 부착했는지, 건축물 기둥‧보와 같은 주요 구조부에 균열이 있는지 등 건축물 상태 점검과 구조적 안전성 전반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거주 취약계층을 위해 서울 등 수도권의 도심 내에 공공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 13일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도권의 도심 내 전세‧매입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서 고시원 등 거주자가 현재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고시원 등 거주자는 임대 입주 절차가 복잡해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내년부터 이들을 위한 ‘취약계층 주거 지원 마중사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정신에 입각해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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