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한 편집국장
채승한 편집국장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물 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이번 행주산성은 무엇을 주제로 글을 써 내려 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와중, 눈이 소복소복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한 시가 생각났다. 매번 눈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그 시, 바로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 사건이다. 항상 눈이 오면 탄생하는 눈사람. 이러한 눈사람은 애석하게도 결국 죽음을 맞이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은 바로 자살일까. 타살일까. 필자는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시간이 왔든, 지나가던 다른 사람이 그 눈사람을 부수었든, 아니면 결국 이러한 자기를 죽게 만드는 파국적인 상황이 올 것임을 알고 미리 생을 마감하였든, 결국 본인이 스스로 이승에 미련이 없어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눈사람은 타살당한 것이다.

 그 눈사람은 참으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분명 자신에게 맞지 않는 그러한 시간들이 오며 자신의 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보든지, 아니면 타인이 자신을 부수어 버리는 것을 마주하며 자신이 점차 부서지고 있는 것을 보든지.....더 이상 자신에게 설 무대는 없다고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며, ‘내가 더 이상 이 자리 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를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러한 눈사람은 더 이상 맞지 않는 이 상황을 떠나기로 하며 텅 빈 욕조에 누워 생각에 잠긴다. 마지막 미련이었을까.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더 살아야 하는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기 모순적 당착에 부딪히게 된다. 눈사람이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사람은 도대체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이승에 던져진 상황 속에서 죽음은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정당화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자살의 이유는 될 수가 없는 것일까. 단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끊어내고 싶은 것인데. 더 이상 나아가야 할 힘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개선될 여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이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외로운 눈사람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마음 기댈 곳 하나 없는 눈사람. 그 눈사람은 정당화되지 않는 자신의 자살을 생각하며 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끝내기 위해, 결국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 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결국, 눈사람이 죽어서 다시 김으로 바뀌듯이, 죽음이라는 것을 막연히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다만 우리 곁에서 사라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다시 새로운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 하나의 과정. 그것이 결국 죽음 아닐까. 막연하게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피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하나의 생로병사로서, 결국 모든 인간이 마주하게 될 결론이니....

결국, 눈사람은 자살을 생각하며 뜨거운 물에서 녹을지, 찬 물에서 녹을지 고민을 하다가 뜨거운 물을 틀어버린다. 그동안 너무 춥게 살아와서, 따듯한 물에 녹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눈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추운 환경에서 상처를 받아오면서 살아온 것일까. 마치, 눈이 처음 내릴 때는 소복한 하얀색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러워지듯이, 분명 태어날 때에는 깨끗한 눈처럼 밝고 명랑한 눈사람이었겠지만, 참으로 힘든 외부 환경으로 인하여 그러한 맑고 깨끗하였던 눈사람에 여러 상처가 나며 더러워진 눈처럼 시꺼멓고 어두운 눈사람이 된 것이다. 즉, 눈사람에게 있어서 따듯한 물을 틀어버리는 것은 이러 한 상처들을 씻어내는 눈사람의 마지막 희망이자 소망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깨끗하고 순수하였던 따듯한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통이 없었던 순수한 시절로....“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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