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이건희 삼성 전회장의 이름으로 그 유족이 1,488점의 미술품을 기증했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등의 작품을 망라하니, 이는 분명 ‘세기의 기증’으로 불릴 만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적 사례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21년 7월 21일부터 2022 년 3월 13일까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연다. 이중섭의 ‘황소’를 비롯하여, 박수근의 ‘농악’, 김기창의 ‘군마도’, 권진규의 조각상 그리고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까지, 그야말로 국보급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우리 현대 작가의 대표작 50점을 시대별로 배치하여 우리 현대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전시회가 열리자마자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예약 경쟁이 만만치 않아 한 계절이 지나서야 관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중섭의 ‘황소’ 진품을 보고 싶었다.

▲ 황소. 이중섭 (1950년대 作)
▲ 황소. 이중섭 (1950년대 作)

 

 이중섭의 ‘황소’는 생각보다 작았다. 루블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리 덮개 뒤에 숨은 ‘모나리자의 미소’ 앞에 관람객이 몰려있어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작다는 것과 그 유명세만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소’는 달랐다. 이중섭 특유의 거칠면서 굵은 터치는 힘차게 꿈틀거렸다. 그것은 작지만 살아 있는 진짜 조선의 황소였다. 생명력 넘치는 대향(大鄕, 이중섭의 호)의 꿈이 황소의 눈망울에서 빛났다.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적이 있던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 진품을 보았을 때처럼 오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이번 관람이 준 또다른 선물은 권진규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권진규는 우리나라의 근대조각을 대표하는 거장이지만, 나는. 사실 권진규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20년대 북한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하고, 거기서 최고상을 받은 바 있다는 것과, 귀국 후 거의 세상과 단절한 채 좁은 작업실에서 대개 두상과 흉상 작업을 통해 고독한 구도자상을 창조했다는 것, 그리고 끝내 1973년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를 끊었다는 사실……. 그러한 권진규가 내 머릿 속에 깊이 각인된 이유가 있다.

 몇년전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간 적이 있다. 시인 한용운과 박인환,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등이 뭍혀 있어, 묘를 둘러보며 그들의 삶을 새겨보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서 권진규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대단히 흥미로운 예술가라고 생각되어 그의 묘소를 찾아보았다. 헌데 큰길가에 있는 다른 인사들의 묘소와 다르게, 그의 묘는 망우리 산 깊은 곳에 버려지다시피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고독한 삶 만큼이나 처절하게 느껴졌다. 그것 자체가 그의 예술을 대변하는 듯했다.

 

▲ 자소상. 권진규 (1967년 作)
▲ 자소상. 권진규 (1967년 作)

 

그러한 권진규의 작품을, 더군다나 자소상(自塑像, 작가 자신의 모습을 찰흙, 석고 따위를 빚거나 덧붙여서 만든 것.) 을 이렇게 전시회에서 만나게 되니 마치 외로이 죽어간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짠했다. 흙으로 빚은 테라코타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한 깊는 속내를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삭발한 머리는 마냥 쓸쓸했고, 꾹 다문 굵은 입술에는 고독한 삶을 견디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먼 곳을 응시하는 웅숭깊은 눈은 미지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힘겹게 힘겹게 기댈 데 없는 삶을 살아내는 한 인간이 거기 있었다. 전율이 느껴졌다.

 2021년 7월에 덕수궁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한국미, 어제와 오늘’을 서막으로, 이번 전시회가 이건희 콜렉션 1부다.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2부: 해외거장전’, ‘3부: 이중섭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어 정말 고맙다. 예술작품은 그 가치를 돈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누구의 소유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깨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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