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훈 수습기자
                                                     강지훈 수습기자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00일을 훌쩍 넘겼지만 산업 현장에서 여전히 노동자가 일하다 숨지는 일이 하루도 빠짐없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얼마 전 인천공항에서 항공기 견인 차량에 머리가 끼어 노동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고, 평택 매일유업 공장에서도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보건 책임 의무를 부과하고 기업의 안전 조치와 투자를 강화해 산업재해 사고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지만, 정작 사고 예방 효과는 법 시행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접수된 산업 현장 사망 사고 건수는 15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5% 증가했다. 사실상 입법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심지어 사고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 처벌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1호 수사 대상’으로 주목받은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 수사는 석 달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법을 강력하게 집행 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강한 처벌 조항 때문에 법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엄벌주의만으로는 산업재해 사고를 현실적으로 감소시키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처벌 강도를 징역형에서 벌금형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법 개정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논란이 지속될 우려가 크다.

  법의 애매한 처벌 기준과 법적 의무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경영 책임자가 지켜야 할 의무 사항과 관련된 안전 조치가 불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고 원청과 하청의 책임 구분, 사고의 책임 소재와 인과관계 규명 등이 확실하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시행령 8조에 명시된 “필요한 인력을 갖추어” “필요한 예산을 편성·집행할 것” 등 ‘필요한’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이어서 실제 얼마만큼의 인력과 예산을 마련하고 편성해야 하는지 분 명하지 않다.

  물론 법의 실효성 문제와 별개로 산업 현장에 만연해 있는 안전불감증도 사망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문제에 한 몫한다. 안전모 미착용, 안전띠 시설 미비 등 기본 안전 수칙을 무시하는 현장이 적지 않다. 습관처럼 안전불감증이 몸에 밴 노동자 개개인의 안전 의식 수준이 향상되려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하도급 업체들은 안전 관리 비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또 법 규정이 포괄적이고 모호해 대형업체를 제외한 열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나머지 업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문제는 법 시행과 별도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경영 책임자까지 강하게 처벌해 산업 현장 사망 사고를 사 전에 막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지만, 실효성 논란이 불 거질 만큼 관련 처벌과 예방 효과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의 안전 태만 경영은 변함이 없고 경영자들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그리고 지금도 노동자들은 떨어져서, 깔려서, 끼어서, 쇳물에 빠져서, 무너져서, 화재와 폭발, 과로로 하루를 무사히 끝맺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법이 제정되기까지 산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가족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들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제정된 것이다. 정부는 엄정한 잣대로 법을 확실하게 집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고, 실제 집행으로 이어져 가야 한다. 또한,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안전 관리와 사고 예방이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등의 추가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열약한 조건 속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과 산재 사망 유가족들의 절규를 귓등으로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더는 일하다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열망이 헛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 하자는 본래의 입법 취지를 잘 살려내 중대재해처벌법이 단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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