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국장이 되었다. 감히 학창 시절에 반장도 못 해본 놈이 국장이 되었다. 얼떨결에 수락한 국장 자리... 솔직히 겁이 났다. ‘뭐 그렇게까지 오버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늘 이래 왔다. ...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항상 도망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불편해 술자리를 피했고 처음 들어간 축구 동아리에서는 첫 경기에서 헛발질을 크게 하는 바람에 창피해서 다음 날 탈퇴했다. 처음 갔던 동아리 MT에서는 술 게임을 잘 몰라서 자는 척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랬던 내가 회식을 주최하는 신문사 국장이 되다니... 맙소사! 1학년 때 나라면 과연 믿을까?

 

사실 국장은 생각도 안 했다. 국장이 되면 기존의 내 스타일 대로 도망갈 수도, 뒤에 숨을 수도 없지 않은가. 젠장. 생각만 해도 숨 막혔다. 나만큼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칭찬을 들어도 ..야단을 맞아도 ..하고 무덤덤해야 되는데 그게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등바등 타인을 신경 쓰고 눈치를 봤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이 우선시 됐다. 잠깐이라도 실수해서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했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내가 변했다며 손가락질하고 돌아서지 않을까 걱정되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점점 힘들었다. 그렇게 자리를 피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 늘 혼자 몰래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안 믿고 살았다. 이 말이 진짜라면 세상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말은 진짜였다. 도망치고 다른 일을 해도 결국 시련은 왔다. 심지어 끝을 보지 못하고 도망치면 그것은 내 족쇄가 되고 자신감을 뚝뚝 떨어뜨렸다. 군대에서 운전병을 포기했을 때도 그랬고 동아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나올 때마다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인생에서 크게 한 번 도망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다른 학교 다른 과로 편입하고 싶었다. 나는 내 전공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유튜브에서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도 거기에 홀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어린 마음이었지만 당시에는 꽤 진지한 고민이었다. 항상 도망치기 바빴던 나의 습관성 도피 병이 또 도진 것이었다.

 

당시에 구체적인 휴학 계획을 세워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일단 졸업까지 한 뒤에 다른 것을 해보라며 말리셨다. 2학년까지 들인 비용과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덧붙이셨다. 결국 나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휴학하지 않았고 당시엔 원망도 조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만약 그때 지금의 전공을 포기하고 편입 준비를 했다면 영원히 도망자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전공이 괜찮은지 물어보면 솔직히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예전처럼 나랑 안 맞으니깐 포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나는 드디어 이 생각이 핑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자퇴하지 않고 신문사 국장까지 하게 된 지금은 과거의 내가 얼마나 핑계로 가득한 삶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늘 어려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며 포기했고 쉬운 길만 찾으려고 했다. ‘내 수준은 이정도야라고 정신 승리하며 내 가치를 스스로 낮췄다. 당시엔 어려운 일을 회피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궁지로 몰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에게 떳떳해지려고 한다. 요즘 나는 예전처럼 피하지 않고 스스로 당당해지려고 한다. 솔직히 저절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그때마다 나를 다음과 같이 채찍질한다. ‘또 도망치려고? 이건 내가 성장하기 위한 기회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이제는 그만 도망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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