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평택 SPC 계열 제빵공장에 서 23세 노동자 A씨가 소스 배합기 끼임 사 고로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질 식사로 밝혀졌다. 이 사고는 2인 1조 근무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산업안전보건 공단의 안전 인증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교 반기를 사용하여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본 래 이는 3인 1조를 이루어 근무하며 제조 시엔 2인 1조 수칙을 지켜야 하지만 회사 는 비용 절감의 목적으로 인원을 축소하였 고 2인 1조로 근무하는 도중 1명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교반기엔 본래 ‘인터록’이라 불리는 물체 끼임 감지 센서가 부착되어있어야 했는데 작업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센서와 뚜껑을 제거하고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사 고 당시 A씨는 소스 배합 작업을 위해 교반 기를 작동하는 도중 앞치마가 기계의 회전 날에 말려 들어가면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고 전해졌다. ‘안전사고 발생 경위 및 경과보고서’에는 “발견 당시 교반기에는 내 용물이 가득한 상황이었고 동료 작업자들 이 내용물을 비운 후 재해자를 확인했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적혀 있다.

파리바게뜨 불매운동에 이은 SPC 불매운동

  SPC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28일 민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 장 ‘임종린’ 씨는 SPC 파리바게뜨의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중단시키고 민주노 조를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더 이상 우리 조합원을 괴롭히고, 차별하지 말라”며 단식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점심시간 1 시간 보장, 병가 보장, 가족 경조 휴가, 임산 부에 대한 모성보호, 연차 보건 휴가, 산재 처리 등 노동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단식투쟁은 53일간 이루어졌지만 사측은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인정 하지 않아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는 불매운동의 불씨를 남겼다. 

  사망사고 이후 불매운동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소비자들 은 노동자들의 피와 살을 갈아 만든 빵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며 불매운동을 시작했 다. 각종 커뮤니티와 카페, SNS 등을 통해 SPC 계열사 목록을 공유하였고 대학교에 는 대자보도 붙었다.

꺼지지 않는 불씨, 더욱 가중되는 논란들

  SPC의 노동자 대우에 대한 만행은 이처럼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 노동자 A씨 사망 사건은 어떻게 전국적인 불매운동의 시초가 되었을까. 처음 이 사건의 공분을 샀던 점은 A씨 사망뿐만 아니라 회사의 대처였다. 시신 발견 이후 같이 일하던 노동자들 이 이 시신을 수습하였는데 SPC는 같은 현 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의 놀란 마음을 위로하는 대신, 다음날 그 사건을 지켜보았던 노동자들을 출근시키고 사고현장 옆에서 근무하게 했다. 노동자 A씨의 장례식장에 팥빵과 크림빵을 두고 갔다는 사실도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분노를 일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망사고 8일 전 근무 중 손을 다친 직원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 로 방치되었고 SPC 회장이 사망사고에 사과 한 지 이틀만에 샤니 성남 공장에서 40대 노동자 C씨의 손가락이 기계에 의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매의 불씨를 키웠다.

대체재를 찾는 소비자들... SPC가 아니면 괜찮은걸까

  논란이 커지자 SPC 대신 다른 기업을 소비하겠다며 대체재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 었다. 접근성이 좋았던 파리바게뜨의 대체재로 가장 먼저 뚜레쥬르가 언급되었다. 가장 중심적으로 다뤘던 SPC의 파리바게뜨는 적어도 노조가 활성화되어있어 노조 측에서 시위도 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뚜레쥬르는 활성화된 노조가 없어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어떤지 들을 수도 없는 게 실상이다. 이는 한 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제빵업계는 매일같이 살인적인 노동량을 감내하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인력을 보충하고 안전에 더 투자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회사에선 인건비를 줄여 운영하려고 하기에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SPC에 특정된 문제가 아니라 식품공장 전반적으로 앓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노조의 요구사항에서도 볼 수 있듯 노동자들은 회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업무환경을 제공하길, 부품이 아닌 사람으 로 대해주기를 바랐다. 전태일은 과거 1970년 11월 13일 이런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평화 시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자살했다. 당장 눈앞의 인건비를 줄이는 게 노동자의 목숨이 걸린 안전보다 중요할까. 2022년 오늘 날 그의 처절한 외침이 다른 이의 입으로 다시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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