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가 겨울이 시작되며 유럽을 본격적으로 강타하자 EU 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국 에너지장관들이 지난 25일 올겨울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우려하며 가스요금 상한제 타협안을 논의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러시아에 천연가스를 의존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전쟁이 시작되자 이번 겨울에 닥쳐올 에너지 위기 대응에 집중했다. 실제로 러시아가 지난 6월 천연가스 공급을 40% 이상 줄이자 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천연가스 확보에 나섰고, 천연가스 매장량을 1년 전 80%에서 90%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EU는 천연가스를 확보하는 것 외의 여러 가지 대안들에 대한 합의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가스요금 상한제 타협안의 경우, 독일과 네덜란드는 가격 상한제가 도입되면 가스 수출국들이 유럽에 가스 공급을 꺼려 구매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면 벨기에, 이탈리아, 폴란드를 포함한 12개국은 인플레이션을 제한하기 위해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EU 내부의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는 헝가리로, 헝가리는 전쟁 전부터 극우 성향의 빅토르 오로반 총리가 이끄는 정부 수립 이후 EU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헝가리는 지난 5월 EU의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에 반대하며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을 연기하며, 대규모 군사훈련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헝가리는 현재의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에 반대했고, EU는 계속되는 이견으로 인해 헝가리에 제공한 보조금을 동결했다. 비슷한 상황의 폴란드 또한 지난 8월 EU 규탄을 선언했다. 폴란드의 법치주의가 EU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한 EU는 법 개정 요청과 벌금을 부과하였고, 이에 폴란드 정부는 내정 간섭이라고 반박하였다. 동시에 EU의 최선봉인 폴란드는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우려하며 유럽 국가들의 재무장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EU의 주도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침묵을 지켰고, 전쟁이 시작되고 급하게 재무장을 시작하자 폴란드 정부는 EU의 행보에 대하여 소국의 말을 듣지 않는 비민주적 의사결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는 EU 내의 분열이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EU는 과거의 프랑스와 영국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극심한 국가적 손실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피하고 싶어 했다. 독일의 라인란트 재무장과 오스트리아의 합병, 뮌헨 협정 등 히틀러의 정치적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물러났다. 특히, 1938년 나치 독일에 최전방 동맹국 체코슬로바키아를 제물로 바친 뮌헨 협정은 전쟁을 1년 늦추는 데에 그쳤고, 1년 뒤 결국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폴란드는 독일을 막아낼 수 없었고, 뒤이어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까지 뒤에서 침공해오는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프랑스 내에서는 '왜 폴란드를 위해 죽어야하느냐'며 반전 운동이 발발하는 등 프랑스는 폴란드의 몰락을 나몰라라했다. 폴란드가 무너진 1년 뒤, 프랑스는 나치에 의해 점령당하고 만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과 영토 확장 야망으로 인해 전쟁을 피하기 위한 서방국들의 일방적인 양보가 현재의 전쟁을 야기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EU가 혼란스러운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고 진정한 연합으로 거듭날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기에 성공하며 올해 말이나 내년 중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 유럽의 분열은 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 1세계 내부에서의 갈등이 계속된다면, 전쟁에 돌입한 러시아처럼 중국 또한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하여 어떤 행보를 내보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서 세계 반대편에 벌어지는 일들에 우리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한 위기가 우리에게 닥쳐왔을 때는 대응하기에 너무 늦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 당사국이 되어 본 적이 있다. 6.25 전쟁에서 미국과 서유럽은 남한을, 소련, 중국과 동유럽은 북한을 지원한 이유가 과연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보면 다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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