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로스
밥 로스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는 밥 로스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듯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밥 아저씨라고 하면 꽤 많이 알 듯하다. 브로콜리 모양의 파마머리를 하고, 캔버스 위에 알래스카 풍경을 30분 만에 뚝딱 그려내는 그림 솜씨를 보며, 한 번쯤 감탄을 내뱉은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에 다닐 무렵, 그림을 그리면서 , 쉽죠?”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발소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그림을 내심 폄하하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좀 많이 보는 편이다. 영화는 영화관에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형 TV를 구입하고 OTT 서비스에 가입하니, 영화관에 가기보다는 저절로 집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그러던 중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의 재구성에 해석이 덧붙이니 사실 그 자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 역사, 예술, 과학, 종교, 생태 등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의 내면을 더욱더 흥미롭게 탐색할 수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이라는 조슈아 로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다.

밥 로스의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은, 1983년부터 약 11년 동안 PBS 방송국에서 31시즌 403화가 방영되었다. 이 방송은 전 세계 약 275개 방송국에서 방송되어 빅히트를 친다. 밥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밥은 매일 200여 통의 편지를 받았고,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팬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팬들은 밥에게 배운 기법으로 그린 자신의 그림을 들고나와 밥의 사인을 받고 싶어 했고, 밥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밥은 그림을 그리면서 늘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그림을 따라 그리는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그 덕에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밥은 아내와 사별한 뒤 복귀 방송에서, 많은 팬의 위로에 감사하며, “상반되는 요소가 필요해요. 그림에서는 어둠과 빛, 빛과 어둠 하는 식으로 이어집니다. 빛에 빛을 더해봤자 아무것도 생기지 않고, 어둠에 어둠을 더해봤자 어차피 원래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런 겁니다. 삶도 마찬가지예요. 슬픔도 가끔 조금씩 겪어봐야 나중에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기쁨을 기다리는 중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삶은 늘 행복의 빛으로 충만했지만, 그의 말년과 죽음 이후는 어둠으로 가득 찼다.

밥이 유명해지면서 그의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던 코왈스키 부부(아네트와 월트)는 돈에 눈이 멀기 시작한다. 그들은 밥 로스 주식회사, BRI를 설립하여 밥의 얼굴이 그려진 물감과 붓을 판매하면서 사업을 시작하였다. 게임, 퍼즐, 머그잔, 티셔츠 등 밥의 얼굴이 담긴 수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밥 로스를 철저히 상품화의 도구로 이용했다. 이로 인해 순수했던 밥과 그들 사이에 분쟁이 잦아졌다. 그들은, 밥이 림프종으로 죽어가는데도 끈질기게 밥으로부터 저작권을 얻어내려고 발악했다. 더 나쁜 것은, 밥이 죽자 그들이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죽음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도 방해했다. 방송에 방영되는 것조차 막았다. 밥의 장례식에는 고작 30명 남짓 최측근만이 참석했다.

밥 로스는 이복동생인 지미 콕스에게 저작권의 51%, 아들 스티브 로스에게 저작권의 49%를 증여하는 내용의 문서를 남겼다. 하지만 스왈스키 부부는 지미 콕스와 모종의 계약을 통해 밥에 관한 모든 권리를 BRI로 넘겼다. 나중에 밥의 아들 밥 스티브가 자신의 권리를 돌려받기 위해 고소했으나 패소하고 만다. 2021년 현재까지 밥에 대한 모든 권리는 BRI가 행사하고 있다. 지금도 시중에는 브로콜리 파마머리를 한 밥의 얼굴이 담긴 수많은 상품이 팔리고 있다. 심지어는 밥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 ‘Ross’라는 밥의 사인을 넣어 버젓이 밥의 작품으로 팔고 있다. BRI로부터 고소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몇몇을 제외하고는 밥의 지인 대부분이 예의 다큐멘터리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고, BRI는 이 다큐멘터리를 고소했다.

밥 로스는 1994517,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의 마지막 회인 403화를 끝내고, 199574, 향년 5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밥은 자신의 그림이 동네 미술관에 걸릴 수는 있어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밥 스스로 자기 작품의 예술성의 깊이에 회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일정한 패턴에 의해 늘 같은 그림을 찍어내듯 그리는 그림이 예술적으로 인정받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가 죽고서 그의 작품은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에 걸렸다. 그의 이젤, 팔레트, 나이프, 붓들도 함께 전시되었다.

다큐멘터리,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을 보면서 갖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돈에 눈먼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한때 이발소 그림이라고 폄하했던 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한가? 예술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기 어렵다. 밥과 밥의 그림은 많은 이를 행복으로 인도했다. 고통스러운 내면을 치유하기도 했다. 그는 그와 만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했다. 그의 말년이나 죽음 이후도 겉보기와는 달리 행복의 빛으로 충만했다. 돈방석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도리어 눈먼 어둠의 감옥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밥의 아들 스티브 로스는 밥 로스수익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밥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의 유산이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밥 로스는 플로리다 고타의 우드론 메모리얼파크에 묻혔다. 거기에는 텔레비전 아티스트 밥 로스(Bob Ross, television artist.)’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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