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편집국장
박주원 편집국장

 

  “꿈이 뭐니?”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었다. 항상 대충 둘러대곤 했지만, 없는데요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나도 한때는 야구선수라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더 이상 야구를 안 시켜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걸까? 결국 학교 숙제 때문에 엄마한테 내 꿈을 들키고 말았다. 그 당시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미술 시간에 도화지에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그래서 나는 홈런을 치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기아타이거즈 4번 타자 박주원, 그게 나의 꿈이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엄마가 우연히 내 그림을 보셨다. 깜박하고 그 그림을 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나한테 진짜로 야구선수가 꿈인지 물어보셨다. 나는 엄마의 표정을 보자마자 겁이 났다. 차마 , 그게 내 꿈이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야구선수가 어떻게 되겠어. 그냥 재미로 그린 거야라고 얼버무렸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더 이상 꿈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사실 엄마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부모로서 자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야구선수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엄마는 나한테 선수가 될 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꿈에서 깨는 데 고작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 학원을 핑계로 차츰 야구를 멀리했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야구를 아예 그만두었다. 확실히 야구에 소질이 없었던 것은 맞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가 나보다 더 멀리, 강하게 공을 던졌으니깐... 하지만 공부는 노력하는 만큼 성적이 나왔다. 게다가 내가 공부를 하면 예전처럼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실 일도 없었다.

 

20살 성인이 되었다.

  그렇게 20살이 되었다. 꿈은 없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해서 상위권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나는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에 합격했다. 이제 성인이 되니 사람들은 더 이상 나한테 꿈을 묻지 않았다. 대신에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궁금해했다. 답변은 나이만큼이나 능숙해졌다. “기계공학과 전공을 살려서 제조업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갔다. 예상했다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내 꿈은 이제 사람들의 예상 범주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내 꿈은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늦게 찾아온 사춘기

  23살에 늦춘기가 왔다. 이제 공부는 그만하고 싶었고 빨리 돈이나 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노선을 이탈하려고 하니 잘하는 게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대학교에서 벗어나고는 싶은데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새벽까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면서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보려고 했다. 그날도 피시방에서 혼자 게임을 마치고 나왔다. 다른 날과 차이가 있다면 평소보다 좀 더 길게 게임을 했다는 것 정도? 아무튼 그날 나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머리는 엉겨 붙어 있었고 어깨는 쓸데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온종일 고작 게임만 해놓고 지쳐있는 모습이 너무나 꼴 보기 싫었다.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게임만 아니면 뭘 하든 지금 내 모습보다 훨씬 낫겠다 싶었다.그날 거울 속 내 모습을 통해 나는 힘들게 노력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 꿈의 역할

  23살에 나는 꿈이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살 이유를 잃어버렸다. 뒤늦게 꿈을 가져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막상 하고 싶은 게 떠올라도 내 마음속에서는 항상 하면 안 된다고 논리적으로 설득했고, 결국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매일 쳇바퀴 같은 현실만 살아갔다. 하지만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말이 꿈을 가지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계획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계획을 세운다고 그 계획을 꼭 이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가 인생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꿈을 가지자.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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