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파이낸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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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정고무신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연재된 일상 만화로 이영일 작가가 쓰고 이 우영 작가가 그린 작품이다.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만화는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만화이다. 15년간 총 45권의 단행본이 나온 만화이고, 우리나라 코믹스 만화 사상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작품이다. 여전히 케이블 TV에서도 방영되고 있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밝은 만화와 그 이면

  밝고 희망찬 메시지를 전달하며 가족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물했던 검정고무신 의 작가는 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홀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약 15년 동안 검정고무신으로 사업화를 한 개수가 77개를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이우영 작가가 받은 저작권료는 1200만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어떤 명목으로 사업화가 이뤄졌는지, 그중에 어떤 제작물에서 수익 배분이 이뤄졌고 어떤 제작물에서 이뤄지지 않았는지, 그 수익을 배분할 때 비율은 어떻게 계산이 되었는지에 대해 작가님들께 구체적인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15년 동안 1200만원이면 1년에 100만원도 채 정산받지 못한 것이다. 네임드 만화의 작가였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많은 부를 축적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막노동에 종사하며 겨우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이우영 작가의 동생이자 검정고무신의 공동제작자인 이우진 작가의 딸 선민씨는 지난달 2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인 이우진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막노동’ 을 했다고 주장했다. 선민 씨는 저작권 분쟁을 벌이던 형설앤 측을 겨냥하여 “그들은 창작시 점 하나 찍지 않았던 검정고무신을 본인들 것이라 우기며 평생을 바쳐 형제가 일궈온 작품이자 인생을 빼앗아 갔다”고 전하며, “그러나 아빠는 빼앗긴 저작권으로 아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 막노동일을 했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기우뚱거리는 집안의 무게는 저 또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저작권 분쟁 소송을 겪으며 건강 문제에도 시달린 것으로 밝혀졌는데 선민 씨는 이에 대해 “큰아빠는 소송이 시작되던 2019년 명절에 스트레스로 인한 어지럼증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고, 아빠는 최근 22년 해가 마무리되던 때, 스트레스로 인한 불명통으로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며 새해를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작가측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검정 고무신 작품을 나가고 있다고 사측에 전했더니 ‘그럼 그것도 우리가 저작자야’라고 대응했다고 한다. 계약서상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중 주요 캐릭터에 대해 공동 저작자 저작권을 등록했기 때문에 사측에서도 해당 요구를 할 여지가 있다는 게 문제이다. 하지만 이를 내세워 저작물 만화와 관련된 모든 사업화를 진행할 권리는 없음에도 사측은 이를 작가의 동의 없이 강행한 것이다.

저작권 소송의 전개

  소송은 2019년 5월경에 먼저 제기되었는데 해당 소송 1심이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작가님들은 소송에 대한 압박으로 검정고무신 저작물에 대한 창작 활동은 사실상 못하고 손과 발이 묶인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도 사업자 측은 저작물에 대한 적법한 권한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작가의 동의 없이 여러 사업화를 해나갔고 그런 현실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작가는 큰 괴로움을 호소하였다. 법정에서 올바른 시비를 가려 결론이 나길 기대했는데 3, 4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결론이 안 나면서 작가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4년 가까이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해당 사건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우영 작가 별세

  이우영 작가가 11일 저녁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다시금 ‘검 정고무신’ 관련 저작권 분쟁이 수면 위로 올랐다. 인천 강화경찰서에서는 가족의 신 고를 받고 출동해 인천 강화군에 있는 자택에 도착해서 숨져있는 이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경찰에 “최근 이 작가가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고 진술하였고 경찰은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지만,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는 점과 가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여 극단적 선택을 내린 것으로 판단했다.

  사망 이틀전 법정에 제출된 진술서를 통해 작가가 법원에 “저에게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라며 “창작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호소한 사실이 드러나며 커뮤니티를 주축으로 한 젊은 층들 사이에서도 더욱 안타까움을 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제2의 구름빵 사태

  과거 ‘구름빵’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는 2004년 단행본으로 나온 어린이 그림책이 40만부가 넘게 팔렸을 뿐만 아니라 TV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2차 콘텐츠로 가공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최초로 테마파크도 조성되었었다. 이렇게 흥행했던 구름빵이지만 백 작가는 “‘구름빵’은 내 자식이지만 내 자식이 아니다. 마음에서 지우려 한다. 다시는 나 같은 작가가 없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신인이던 백작가는 2차 컨텐츠를 포함한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조건으로 850만원을 받았고, 인세 소득만 3억 4000만원에 달했던 대작이었음에도 작가에겐 1850만원만 돌아갔을 뿐이다. 검정 고무신 사태와 동일한 이른바 매절 계약의 피해자인 것이다. 이 ‘구름빵’ 사태는 대표적인 불공정계약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출판, 콘텐츠 제작업계의 불공정 관행은 더 이상 이뤄져선 안 된다. 당시 만화가협회는 관할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불공정한 계약서 또는 각서 등으로 창작자의 권리행사가 지나치게 제한되고, 이런 불공정 계약관계를 이용해 창작자들 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 구하기도 했다. 더 이상 안타까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독자들의 저작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저작권 인식 개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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