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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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자녀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고위 공직자 A씨가 임명 하루만에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A씨의 자녀가 과거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지만, 불복 소송을 제기해 징계 처분을 늦추고 결국 국내 명문 대학에 진학한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 괴롭힘 사건

  2011년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지면서 정부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처분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했다. 학폭위의 처분은 1호(서면사과)부터 9호(퇴학)까지 있는데 1·2·3·8호 조치는 졸업과 동시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조치 사항을 삭제하고, 4·5·6·8호에 대해서는 졸업 후 2년이 지나면 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도록 하고 있고, 9호 퇴학 처분은 삭제하지 않는다. 상급 학교 진학 시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행위로 기재된 조치 사항이 진학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이후 학교생활에서도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시간 끌면 학폭 기록 안 남아

  특히 학교폭력 징계 처분 사실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 대입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기에 가해 학생 측에서 이른바 ‘시간 끌기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피해 학생 측에서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과도하게 부풀려 진술하거나 억울하게 가해 학생으로 몰려 징계를 받는 경우에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학폭위 처분 집행 정지를 신청함으로써 가해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학폭위 징계 처분 효력을 정지시키고, 생활기록부에 처분 사실이 기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녀 위해서라면’…거액 마다않는 학부모들

  이뿐만이 아니라 입시 교육열이 치열한 서울 강남 등지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을 전 문으로 맡는 로펌들이 성행하고 있다. 일부 학폭 전문 로펌들은 홈페이지에 “피해 학생 에게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학폭위로부터 5, 6호 조치 처분을 받았으나 ‘집행 정지’를 이끌어냈다” 또는 “뇌질환을 가진 피해 학생을 밀치고 핸드폰으로 머리를 가격해 학폭위에 회부되었으나 ‘조치 없음’을 이끌어냈다” 등 우수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홍보하고 있다. 학교폭력 사건은 형사 또는 민사로 이어 질 수 있어 수임료가 건당 300만~500만 원부터 많으면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는데도 관련 로펌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17명으로 2019년의 4명에서 4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학교폭력 전문 법률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녀의 특목고 또는 대학 진학에 불리하지 않도록,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징계 처분 사실이라는 주홍글씨가 써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임료가 아깝지 않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반응이다. 가해 학 을 선도하고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교육적인 방법으로 학교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들이 경제력을 앞세워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것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우려가 크다.

 

  처분 지연되는 동안 2차 가해 심각

  가해 학생 측의 불복 소송을 막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문제는 소송으로 인해 징 계 처분이 늦춰지는 동안 2차 가해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 측에서 ‘돈’과 ‘법적 지식’을 동원해 처분 지연을 이끌어내는 동안,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간의 분리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 학생은 적절한 보호 조치 없이 더 큰 고통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학교장이 학교폭력을 인지한 경우 피해자의 반대 의사가 없다면 즉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하는 ‘즉시 분리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나 최대 분리 일수는 3일에 불과하다. 또한 이러한 분리 조치는 사안 초기에 집중 되어 있고, 가해 학생 측에서 학습권 보장을 내세우면 피해 학생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게 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 필요

  가해 학생 측의 불복 소송을 차단할 수 없다면,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줄여 피해 학생을 서둘러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간 제한 없이 제기할 수 있는 소송을 법 개정을 통해 기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대로라면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의 소송 진행 과정을 알 수 없고, 교육지원청과 학교도 피해 학생에게 이를 알릴 근거가 없으며 피해 학생은 법원에 의견을 제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가해 학생 측에게 충분한 구제 수단을 준 만큼 피해 학생에게도 그만큼의 수단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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