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재징유 인장 / 우; 재징유 측관 Groove U
좌; 재징유 인장 / 우; 재징유 측관 Groove U

이번 학기 첫 번째 항공대 문화산책에서는 나의 전각 이야기를 항공대 학생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썼다. 더불어 내가 새긴 한국항공대학교신문과 나의 인장 사진을 실었다. 그 인장은 항공대신문 편집국장께 전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항공대 동아리 수레바퀴재징유의 인장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두 동아리의 지도교수다.

이번에 새긴 인장은 모두 그림 위주다. 일종의 초형인(肖形印)*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레바퀴는 독서 동아리이니 정방형의 인면(印面)에 둥그런 수레바퀴를 새겨 넣었다. 수레바퀴는 여러 가지 상징을 내포하고 있으니 단순한 디자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재징유는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 재즈를 감상도 하고 연주도 하는 동아리이니 약간 일그러진 타원형의 인면에 재즈를 상징하는 ‘J’자 모양의 색소폰과 약간 비틀린 ‘U’자를 새겼다. 색소폰의 곡선 모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애썼고, ‘U’자는 약간 기울였다. 재즈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다.

두 인장에 모두 변관(邊款)을 했다. 전각석의 옆면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는 것을 변관이라고 한다. 전각 측면에 제작자의 성명이나 아호, 제작 시기, 작품 내용, 관련 그림 등을 새긴다. 변관은 인장을 누가, 언제 새겼는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 내용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전각의 의미를 더 풍요롭게 한다.

가운데: 수레바퀴 위 / 왼쪽부터; 작자 이승준 사인, 인간수독오거서, 주경야독 수불석권, 박람강기
가운데: 수레바퀴 위 / 왼쪽부터; 작자 이승준 사인, 인간수독오거서, 주경야독 수불석권, 박람강기

수레바퀴인장에는 내 사인과 더불어 人間須讀五車書*’, ‘晝耕夜讀* 手不釋卷*’,博覽强記*, ‘人間須讀五車書는 당() 시인 두보의 시 백학사의 초가집을 지나며 짓다(題柏學士茅屋, 제백학사모옥)에서 유래하는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에서 남아(南兒)’인간(人間)’으로 바꾼 문구다. 아마도 수레바퀴의 첫 지도교수 윤석달 선생님께서 이 문구를 생각하고 동아리 이름을 지어주신 듯하다. ‘주경야독수불석권, 유래는 다르지만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아서 한 면에 넣었다. 모두 독서를 권장하는 문구다. ‘재징유인장에는 ‘Groove U’를 재즈를 감상하듯이 혹은 연주하듯이 그루브하게 새겼다. 재즈의 생명이 ‘Groove’ 아닌가! 간단하면서도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는 그 상징적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옛날 인류가 동굴에 새긴 그림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면, 전각의 역사는 인류 문명과 함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하는 최초의 전각은 상()나라 수도 은허에서 발견된 새인(璽印)이다.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천자의 인장만을 새()라 부르도록 하고, 다른 인장들은 인()이라 일컫도록 했다. 그래서 이전의 인장을 따로 고새(古璽)라 하고, 이후 오늘날까지 동아시아 도장을 새길 때 이름이나 호 뒤에는 인()을 새기게 되었다. 진의 새()가 옥()으로 만들어져서 옥새라 하는데, 한비자에는 이에 얽힌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재미난 고사가 전해진다.

()나라 사람 화씨가 초산(楚山)에서 옥돌을 주워 그것을 려왕(厲王)에게 바쳤다. 그것을 감정케 하니, 옥장이는 그것을 돌이라 하였다. 자기를 속였다 하여, 왕은 화씨의 왼발을 잘랐다. 려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왕에게 바쳤다. 왕이 다시 옥장이에게 감정케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왕은 그의 오른발을 잘랐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이제 그 옥돌을 안고 초산에 올라 사흘 밤낮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다. 이에 문왕은 천하에 다리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는 어찌 그리 슬피 우는가?” 하고 묻자, 화씨는 발을 잘려서 우는 게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사기꾼이라 하니, 이리 슬피 웁니다.”라고 고했다. 문왕은 장인에게 돌을 다듬으라 명하여 화씨지벽을 얻었다.

이후 화씨지벽은 진시황의 손에 들어갔다. 진시황은 재상 이사에게 제국의 옥새를 만들라 명했다. 삼국지에서 낙양에 입성한 손견이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옥새다. 손견은 이 옥새 때문에 유표에게 죽는다. 손견의 큰아들 손책이 원술에게 이 옥새를 주고 자유의 몸이 되지만, 원술 역시 이 옥새 때문에 죽는다. 후당의 마지막 황제가 이 옥새를 품고 현무루에 불 질러 자살한 후 이 옥새는 사라졌다. 이 보배를 탐한 많은 사람이 죽음의 비극을 맞았으나, 모두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한반도에서는 대한제국의 고종(高宗)이 일본과의 조약서에 의도적으로 가짜 옥새를 찍어 조약 성립의 무효화를 꾀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한제국의 진짜 옥새는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실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분명 인간의 기억 속에서 옥새는 신비한 힘을 지닌 최고 권력의 상징이다. 그 신비한 힘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더 커지는 듯하다. 진시황의 옥새가 전설이듯이 이 또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보면, 인간의 머릿속에 새()는 분명 그 위엄만큼이나 위험한 존재다.

소설가 정한숙은 전황당인보기에서 자가가 새긴 인장의 가치를 몰라주는 친구에게 버릴 수 없는 친구에게 버림을 듯싶어 한없이 섭섭했다. ()에 비하면 인장(印章)은 권력보다는 신뢰의 의미를 더 많이 내포하는 듯하다. 하지만 둘 모두 세속에서는 좀 먼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를 일러 지음(知音)’*이라 한다. 부끄럽지만 수레바퀴재징유회원들과 우리 항공대 구성원들이 모두 나의 지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초형인(肖形印) 대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인장.

* 인간수독오거서(人間須讀五車書); 인간은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

*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다,

*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 박람강기(博覽强記); 여러 가지의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 남아수독오거(南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

* 지음(知音);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자기의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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